[시론/김용하]‘걱정 2030’

  • 입력 2006년 9월 2일 03시 00분


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 보고서를 보면 2030년에 우리나라가 1인당 국내총생산 4만9000달러, 삶의 질이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명실 공히 세계 일류 국가가 된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꿈과 희망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공허한 내용이면 대마초를 한대 피워 보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희망보고서는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최근 일본이 15년 여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기미를 보이지만 우리가 불황에서 벗어나는 데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황당한 애드벌룬을 띄우지 말고 과거 급속한 성장 과정에서 뒤틀어진 국가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바로잡아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파도를 넘어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 대책으로 무엇보다도 시급한 국정 과제는 연금 개혁이다. 2030년이 되기 전에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이른바 4대 공적연금의 개혁이 시급하다. 2030 보고서에는 국민이 좋아할 것만 나열하고 정말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 국민이 감내해야 할 고통을 숨기고 있다. 예를 들어 발등의 불인 연금 개혁을 하겠다면서 2030년에는 1200만 명의 노인 중 3분의 2가 연금을 받고 연금 급여는 퇴직 전 소득의 50%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현재의 국민연금 급여도 실질적으로는 퇴직 전 소득의 25%가 되기 어렵고 공무원연금조차 50%가 되지 않는데도 개혁해야 한다고 난리 치는데 연금 급여 수준을 퇴직 전 소득의 50%로 만들겠다고 하니 연금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 ‘개악’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보건복지부 행정자치부 국방부 교육인적자원부 모두 연금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지만 급여 수준을 올려 주겠다는 식의 내용이 2030 보고서에 실렸다는 것은 공적연금과 관련해 부처 간 협의가 잘못됐음을 의미한다. 4대 공적연금은 4개의 법에 따로 규정되어 있지만 공적연금의 개혁 논의는 함께 다뤄야 한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3개 특수직역 연금은 급여 구조가 거의 같고, 국민연금도 재정적 측면에서 다른 연금과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려면 4대 공적연금의 개혁을 동시에 다룰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위원회에서는 책임 있는 심의 의사결정 기능과 전문적인 연구 분석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데 책임 있는 의사결정이란 측면에서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에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지난해 말 국회 국민연금개혁특위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연금개혁특위가 실패한 이유는 논의 기간이 너무 짧았고, 재정적으로나 구조상으로나 문제가 더 심각한 공무원연금 등을 논의에서 제외한 데다, 위원회 산하에 실질적인 개혁 방안을 논의할 전문위원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금 개혁은 매우 시급하지만, 급하다고 졸속으로 해서도 안 된다. 연금 개혁은 한번 하면 제도 변경이 어렵고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 정치적인 성과에 눈이 어두워 충분한 국민 합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법령을 개정하면 개혁 후 폭풍을 견디기 어려울 뿐 아니라 몇 년 가지 않아서 또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 연금 개혁안은 2030년이 아니라 2100년까지도 큰 손질 없이 가져갈 수 있는 백년대계여야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4대 공적연금의 개혁은 국민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을 수 있지만, 과거 정권이 일회용으로 써먹던 비전 장사보다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의 초석을 놓는다는 점에서 나중에라도 칭송 들을 일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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