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인권을 생각합니다]인사 보도와 인권

  • 입력 2006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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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윤영철 위원(왼쪽부터)이 11일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인사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안철민  기자
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윤영철 위원(왼쪽부터)이 11일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인사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안철민 기자
《최근 대법관 교체, 개각, 방송위원 추천 등 인사와 관련된 보도가 줄을 이었다. 나라의 주요 공직을 맡을 사람의 자질 전문성 경력 행적 등을 철저히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 임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당사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11일 ‘인사 보도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을 가졌다.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위원장과 윤영철(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이지은(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최현희(변호사) 위원이 참석했다. 사회=송영언 독자서비스센터장》

―최근의 인사 보도에서 나타난 문제점부터 살펴보지요.

▽김일수 위원장=언론이 고위 공직후보자의 인물됨을 검증하는 작업은 국익을 위해서나 국민에게 판단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보도를 보면 매체 간에 일종의 편가르기식 편향된 시각을 엿보이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공정성 객관성을 훼손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윤영철 위원=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내정자의 두 딸과 관련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두 딸이 모두 외국어고를 졸업했고, 이 중 맏딸은 어문계열이 아닌 사회과학 계열에 진학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해석의 여지가 있는 문제지만 공직자의 자격 검증에 사적 영역인 가정사를 끼워 맞춰 핵심을 비켜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신문 입장에선 외고 출신은 어문계열로 진학하도록 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이 사례를 통해 보여 주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독자들은 제목만 보고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이지은 위원=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인물에겐 관대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에 대해선 어떻게든 흠집을 찾아내려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인격권 침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교육 수장의 자녀 교육관이 하나의 참고 사항은 될 수 있겠지만 본인도 아니고 제3자인 자녀까지 들춰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최현희 위원=선출직과 임명직을 구분해서 보면 어떨까요. 선출직 공직자는 대표성을 갖는데 정보는 제한돼 있으니 언론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고 그만큼 범위를 넓게 인정해야 합니다. 반면 임명직 공직자는 임명권자가 정책 능력과 자질을 검증한 후 적임자를 내정하니 좀 더 신중해야 하겠지요. 직무 수행과 무관한 예상 밖의 사유가 튀어나와 부정적 여론이 일게 되면 되레 자질이 떨어지는 ‘대타(代打)’를 기용해야 하는 더 나쁜 상황으로 갈 수도 있어요.

▽김 위원장=우리 언론의 경우 이른바 하마평(下馬評) 식 보도가 잦은데 적중률을 50%로 봐도 나머지 50%는 선의의 피해자가 되는 셈이니 인격권 훼손의 우려가 큽니다. “잘나가는 것 같더니 그게 아니네” 하는 얘기를 들을까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게 한다면 곤란하지요. 인사를 점치는 것은 축구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스코어를 보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독일에 머물면서 보니 점치기 보도 대신 인사 발표 후 자세한 인물평을 실어 정보를 전달하던데 우리 언론이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윤 위원=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임명직으로 방송위원이 있습니다.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느냐가 중요한데 전형적인 편가르기식으로 흐르고 있어 걱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해당인사가 방송정책에 대해서 어떤 성향을 보이고, 신문법에 대해선 어떤 견해를 보였는지 등 국민이 꼭 알아야 할 사실은 실종돼 버린 것 같아요.

―검증을 철저히 하면서도 인권침해 소지가 없는 바람직한 인사 보도 방향을 제시해 주시지요.

▽김 위원장=무엇보다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이 문제입니다. 재산 형성 과정에 문제가 있다 해도 ‘투기꾼’ 등 가치 판단적 표현은 자제해야 옳겠지요. 사생활의 영역을 침해하는 보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자기 철학이 있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 잘못된 연대책임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주변 맴돌기식 검증은 피해야 합니다.

▽윤 위원=‘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사실 보도 시늉만 낼 뿐 판단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두루뭉술한 지적은 피해야 합니다. 과거 행적이나 성향 또는 발언 내용 등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해 독자들이 실체를 알 수 있도록 땀 냄새가 나는 취재가 요구됩니다. 인사 검증 보도의 가이드라인 확립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인 점검 목록을 마련해야 하고, 축적된 자료를 재가공해 분석하는 탐사보도 방식을 활용한다면 깊이 있는 전달이 가능하겠지요.

▽이 위원=‘카더라’ 식의 무책임한 추측성 보도를 남발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면 독자의 불신이 커지게 되고 결국 언론사로서도 손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인권침해를 당한 당사자의 심정은 더 말할 것이 없겠죠.

▽최 위원=정파적 인물의 임명직 인사라고 해도 언론은 균형감각을 갖고 보도해야 합니다. ‘입맛’에 따라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한다면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 된다는 점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정책 능력과는 상관없는 보도로 적임자를 잃게 된다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될 테니까요.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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