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취미삼아 SF소설 쓰다 양자컴퓨터 영감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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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우주와 물리학을 넘나드는 소재로 소설을 쓰면서 참신한 연구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서울시립대 안도열 교수.
천문우주와 물리학을 넘나드는 소재로 소설을 쓰면서 참신한 연구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서울시립대 안도열 교수.
‘키론별의 외계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블랙홀이 비정상적으로 붕괴돼 시공간이 점점 왜곡돼 가는 현상을 탐사하고 있다.

“지구의 시공간에도 변화가 있나?”

“지구인들이 탄 비행체가 110년 전인 서기 1894년의 시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4년 전 취미 삼아 써 봤던 SF 역사소설 ‘임페리얼 코리아, 대한제국 대백과사전’의 한 장면이다. 이 소설은 현대의 한국군과 과학자들이 이라크에 파병되던 중 블랙홀과 비슷한 웜홀을 만나 조선시대로 돌아가 동학혁명을 성공시키면서 역사를 바꾼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설정은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저서 ‘시간의 역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정보가 웜홀을 통해 빠져 나오면 시간여행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것.

소설을 써 가면서 블랙홀도 일종의 양자컴퓨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자컴퓨터는 양자정보를 블랙박스에서 처리한 다음 새로운 형태의 양자정보로 바꿔 내보내는 원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기존 컴퓨터가 데이터를 0과 1로 인식하듯, 양자컴퓨터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입자가 갖는 ‘아래’와 ‘위’ 두 가지 상태의 양자정보로 인식한다.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면 기존 슈퍼컴퓨터로 수억 년 이상 걸리는 복잡한 계산을 몇 분 안에 끝낼 수 있다.

그때부터 블랙홀과 양자정보를 관련 지은 논문을 찾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2000년 대 초반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로이드 교수와 캘리포니아공대의 프레스킬 교수가 유사한 생각을 제안했던 사실을 발견했다.

소설 같은 주제지만 우리 양자정보처리연구단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2002년 가을 몇 주 동안 거의 밤을 새다 시피하면서 이 연구에 파고들었다. 그 결과 2003년부터 최근까지 블랙홀과 양자정보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양자컴퓨터 전문 벤처기업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의 중편소설 ‘양자컴퓨터’가 문학동네 작가상 예심 선정 작품으로 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소설과 과학은 얼핏 보면 서로 정반대의 특성을 지닌 분야다. 하지만 때로는 이 둘이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dahn@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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