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만우]외국자본의 은행지배, 양극화 키운다

  • 입력 2006년 3월 1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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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가 시한폭탄 대접을 받으며 부풀려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더욱 악화됐다면 8년 넘게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직을 돌아가며 맡아 온 현 범여권에 더 큰 책임이 있을 터인데 공수의 방향이 헷갈린다. 양극화 띄우기가 불 내놓고 “불이야” 소리치는 수준이라면 몰라도 뒤집어씌울 기독교도를 찾는 ‘네로의 수법’이어서는 안 된다.

양극화가 확산된 주된 이유는 기업 투자 부진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과 저임금으로 인한 빈곤층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기업 투자 부진은 자금을 공급하는 시중 은행들의 소유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시중 은행 중에서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은 외국 자본이 주식 전부를 매수해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상장 폐지를 통해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다. 국민, 하나, 신한은행은 외국인 지분이 80%를 넘나들고 있어 이익의 대부분을 외국인 주주가 챙기고 있다. 유일한 토종 자본인 우리은행도 공적자금이 투입된 후 주식 매각이 완료되지 않은 임시적 상황으로 매각 결과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외국 자본이 대부분 은행의 지배권을 갖게 된 것은 지나친 금산분리원칙 때문이다. 은행법상 산업 자본은 은행에 대해 4%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다. 이러한 직접적이고도 강력한 철책 때문에 국내 산업 자본이 접근하지 못하는 사이에 외국 자본이 은행 주식을 독식해 외국 자본의 은행지배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외국인 지배 은행들은 예외 없이 기업대출 비중은 줄이고 가계대출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SC제일은행의 가계대출 비중은 76%로 우리은행의 48%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외국인 지분이 85%에 이르는 국민은행의 가계대출 비중도 69%나 된다. 이에 비해 은행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인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우리은행이 43%인 데 비해 SC제일은행 18%, 국민은행 27%로 절망적인 수준이다. 외국계 은행의 가계대출 위주 영업은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의 투자 및 고용 위축으로 연결된다. 가계대출도 일부 고소득 계층과 담보 위주로 집중되고 있다. 외국계 은행들의 전화와 e메일을 통한 집요한 대출 권유는 안정적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다 겪어 본 일이다. 그러나 정작 돈이 필요한 서민에게는 굳게 문을 닫고 있어 고금리의 사금융이 활개를 치는 금융의 양극화가 가속되고 있다.

국민, 하나, 신한은행 등 외국인 지분이 높은 은행의 임원들은 올해에도 대규모 스톡옵션을 받았다. 스톡옵션은 주가 상승 시 엄청난 이득을 챙기는 보상으로 단기 차익에 민감한 외국인 주주들이 선호한다. 원래 스톡옵션은 경영자의 과도한 위험 회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연구개발 투자가 중요한 정보기술(IT) 산업의 전문경영인을 대상으로 개발된 제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안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예금자 보호대상의 은행이 주로 애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유례가 없는 스톡옵션 중심의 은행 임원 보상안은 외국인 주주들이 자신의 이익과 임원들의 이익을 같이 묶으려는 ‘연환계’인 것이다. 은행 창구마다 줄줄이 앉아 있는 비정규직 행원들의 열악한 근무 조건과 비교하면 사외이사와 감사들까지 부여받은 대규모 스톡옵션은 양극화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자본에 대한 출자규제 족쇄의 반사이익으로 외국인들이 거액의 공적자금을 삼킨 은행을 헐값에 인수해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외국 자본 지배 은행들의 가계대출 위주 영업 행태가 우리 기업들의 성장 동력을 끊어 일자리 부족 사태가 심화되고 있다.

이제라도 금산분리정책을 재검토하고 토종 자본을 집결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금융 주식매각 문제는 외국 자본을 우대하는 우둔한 금산분리정책을 재검토한 다음에 다뤄야 한다. 외국 자본의 은행 지배를 완화하기 위해 종업원 퇴직연금에 신주 할인가 우선배정 등의 방안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은행의 기업자금 공급 기능이 제대로 회복돼야만 기업 투자가 살아나고 일자리 창출에 의한 양극화 해소의 통로를 마련할 수 있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 여당이 할 일은 ‘양극화 띄우기’가 아니라 철저한 원인 진단과 함께 확실한 해결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을 안심시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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