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수용]부하직원 희생양 삼은 경제首長

  • 입력 2006년 2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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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리나 차관이 책임져야지 왜 실무자를 자르나요? 이래선 수장을 따를 수 없죠.”

재정경제부가 중장기 조세개혁방안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윤영선 조세개혁실무기획단 부단장(국장급)을 보직 해임한 7일.

재경부 과장급 이하 실무자들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윤 부단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한 부총리는 경제부처 간 의견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해 외부로부터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엔 재경부 부하 직원들까지 그의 리더십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한 부총리는 지난해 3월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색깔 없는 부총리가 되겠다”고 말해 경제부총리의 위상을 스스로 위축시켰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나선 지난해 7월 이후에는 그의 목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는 과거에 ‘합리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금리 정책에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자 ‘합리적 리더십’이 효과를 본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합리적 리더십은 정치권의 민감한 이해관계가 걸린 조세개혁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바닥을 드러냈다.

재경부 부하 직원들의 가장 큰 불만은 한 부총리가 외풍을 전혀 막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뚝심이 없다는 것이다.

세제실 관계자는 “저쪽(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요구를 막느라 힘들었다”고 실토했다.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약속을 해 놓고 세금 부담은 안 늘린다고 하면 돈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실무를 맡은 관리들은 증세 방안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본보가 조세개혁안을 보도한 6일 재경부 실무자들은 한 부총리의 행보에 맥이 빠졌다고 한다. 대뜸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를 찾아가 사과했기 때문이다. 이 조세개혁안은 당초 20일 공청회에서 다뤄질 예정이었기 때문에 비밀이 아니었다.

다음 날 한 부총리는 윤 부단장을 보직 해임했다. 재경부는 외압이 없었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드물다. 힘없는 부총리가 정치권에 밀려 더 힘없는 실무자를 잘랐다는 자조까지 나온다.

재경부의 한 간부는 “후배들만큼은 정치 논리에 떠밀려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풍토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더십 없는 수장에겐 쉽지 않은 과제다.

홍수용 경제부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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