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45>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2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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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왕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량이 때 아닌 한왕의 호기에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한왕이 간밤에 여마동(呂馬童)이 항복해 온 일을 말하며 한층 기세를 올렸다. 장량도 그 일을 들은 듯했지만 한왕과는 달리 담담한 표정으로 받았다.

“그럴수록 나가 싸워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대왕께서 급히 군사를 이끌고 나가시는 것이야말로 지금 항왕이 가장 바라는 일일 것입니다.”

“아무리 천하의 패왕이라지만 굶주려 싸울 힘도 없는 군사를 거느리고 무얼 한단 말이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짐승이 돌아서서 대들 때가 가장 위험한 법입니다. 초나라가 군량이 모자라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싸울 힘까지 모두 잃었을 정도는 아닙니다. 싸움은 한 시진이면 대세가 정해집니다. 항왕은 싸움의 기미에 밝은 사람, 한 시진의 예기를 짜낼 수도 없을 만큼 굶주린 군사를 이끌고 억지를 부릴 사람이 아닙니다.”

장량이 그렇게 말해 놓고 다시 달래듯 덧붙였다.

“조금만 더 참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십시오. 곧 때가 이를 것입니다.”

“과인은 벌써 여섯 달째 이곳 광무산에 묶여 몸만 다치고 분주하기만 했을 뿐, 한 발도 동쪽으로 내디디지 못했소.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

한왕이 못마땅한 듯 볼멘소리를 했다. 그때 진평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그냥 기다리시는 게 아니라 대왕께서 불러들이셔야 하겠지요. 항왕의 군사들이 배불리 먹고도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하는 형세를 만드셔야 합니다.”

“이렇게 진채 안에 갇혀 있으면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한왕이 다시 불평처럼 그렇게 물었다. 진평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대군을 내어 힘으로 항왕의 군사를 쳐부술 수는 없지만, 항왕 또한 더는 우리를 서(西)광무에 가둬 놓을 힘은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이제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이 답답한 형세를 우리에게 이롭게 뒤집어 놓으실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사람을 보낸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이 형세를 다시 한번 뒤집을 수가 있는가?”

한왕이 드디어 불평을 거두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진평을 보며 물었다. 진평이 무언가 가슴에 품고 있는 계책이 있어 그렇게 나선 것임을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구강왕(九江王) 경포를 잊고 계십니까? 경포는 수하(隨何)를 따라 대왕의 슬하로 드는 바람에 처자(妻子)와 나라를 잃었습니다. 거기다가 대왕께서는 그에게 회남왕(淮南王)을 약속하시고 적지 않은 군사까지 나눠 주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그를 불러 쓰지 않으십니까?”

“회남은 여기서 먼 데다 경포도 여러 고을을 회복했다지만 구강 땅을 다 차지하지는 못했다. 지난번에 항왕이 용저를 보내 그 땅을 휩쓸며 겁을 준 까닭에 그곳 백성들이 아직 항왕을 두려워하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제 앞을 닦기도 급한데 멀리 군사를 보내 과인을 도울 수 있겠는가?”

한왕이 겨우 그것뿐이냐고 힐문하는 듯 진평에게 그렇게 되물었다. 진평이 조금도 자신을 잃지 않고 한왕의 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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