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시위 강국’

입력 2005-12-15 03:10수정 2009-10-0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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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의식구조나 사회적 특성의 하나로 많은 학자가 ‘체면’을 꼽는다.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 속담에서 보듯, 한국 사람은 무엇보다 체면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체면이 서게 돼 다행이라든가, 체면상 그럴 수가 없다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걸 보면 체면의식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얼굴 하나 지키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체면을 형식주의 관점에서 분석한 학자도 있다. 위신을 지키기 위한, 사실과 다른 겉치레 행동이 체면의 메커니즘이라는 설명이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는 속담이 말해 주듯 한국인의 ‘체면’은 ‘치레’라는 것이다. 표리(表裏)의 일치보다 명분을 중시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속성을 빗댄 말이다. 회의 석상에서 여러 사람의 반대를 의식해 남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도 체면치레의 범주에 든다.

▷요즘 홍콩에선 체면을 벗어던진 한국 시위대가 화제다. 제6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개막된 13일 한국 시위대는 ‘수륙(水陸) 양동 작전’을 폈다. 빅토리아공원에서 농산물 개방 반대 집회를 연 뒤 WTO 회의장으로 향하다 경찰과 충돌한 것은 서울에서 보던 대로다. 시위 강국(强國)의 면모는 그 다음에 과시됐다. 경찰이 막자 회의장까지 헤엄쳐 가겠다며 100여 명이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런 ‘그림’을 외국 TV가 놓칠 리 없다. 저녁 내내 반복해서 틀었다. “야, ×××야” 같은 험한 말도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이번에 홍콩에 모인 전 세계 시위대는 39개국 4000여 명. 한국이 1500여 명으로 가장 많아 사실상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어제는 더 격렬한 시위가 이어져 한때 경찰 방패 10여 개를 빼앗기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지 언론이 ‘코리안 밀리턴트(한국 전사·戰士)’라고 했을 정도다. 이쯤 되면 드라마 ‘대장금’에 심취해 있던 홍콩 사람들이 ‘어느 쪽이 진짜 한류(韓流)인지’ 혼란을 느끼지 않겠는가. 나라의 체면이 걱정이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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