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20>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1월 23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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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나라 장수 하나가 신음과 함께 병장기를 놓치고 달아나면서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하나가 쫓기자 다른 장수들도 하나 둘 손발이 어지러워져 허둥대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싸우다 말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장수까지 생겼다. 그러다가 그들 가운데 하나가 다시 용저의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지자 한나라 장수들은 곧바로 밀리기 시작했다.

기세를 탄 초나라 장수들이 더욱 거세게 한군을 몰아 대고, 다시 사졸들이 가세해 진문을 열고 달려나왔다. 한군 쪽에서도 사졸들이 달려나가 맞섰으나 한번 기운 전세는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힘을 다해 싸우기는 해도 한군은 차츰 유수 쪽으로 밀렸다.

한군이 유수 한가운데쯤 밀렸을 때다. 갑자기 한군 진채가 있는 유수 서쪽 언덕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걸 본 한나라 장수들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며 사졸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라. 건너편 진채로 돌아가 전열을 정비한 뒤에 다시 싸우자!”

그러자 그때껏 밀리면서도 어렵게 버티던 한군 사졸들까지 갑자기 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한나라 장졸들이 그와 같이 몰리는 게 자연스럽지만, 실은 모두가 한신이 짜놓은 계책에 따른 것이었다. 한나라 장졸들은 용저의 대군을 상류의 물길이 막혀 얕아진 강바닥으로 꾀어 들이기 위해 거짓으로 이기지 못한 척(佯不勝) 달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용저는 흐뭇한 얼굴로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저것 보아라. 저래도 한신이 겁쟁이가 아니냐? 어서 저 겁쟁이를 뒤쫓아 사로잡아라.”

그리고는 앞뒤 없이 대군을 물 마른 유수 강바닥으로 몰아넣었다. 그때 유수 동쪽 진채에 있던 초나라와 제나라의 군사는 합쳐 10만이 넘었다. 옆으로 늘어서서 한꺼번에 뒤쫓지 못하고 앞뒤로 이어 뒤쫓으니 절로 굵고 긴 뱀 모양의 진형(長蛇陣)이 되었다.

앞머리 쪽은 쫓기는 한나라 군사가 되고 몸통은 뒤쫓는 초나라 군사와 제나라 군사로 된 굵고 긴 뱀의 허리가 유수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다. 갑자기 무언가 쏴아 하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전까지도 말라 있는 것 같던 유수 상류 쪽에서 벌건 황톳물이 휩쓸고 내려왔다. 용저는 그제야 속은 것을 알았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모두 물러나라! 어서 강둑으로!”

그렇게 외치며 말고삐를 당겼으나 거센 물결은 잠깐 사이에 10만 제·초(齊楚) 연합군을 세 토막으로 갈라놓았다. 곧 앞서 한군을 뒤쫓다가 물을 거의 다 건넌 한 토막과 황톳물에 휩쓸려 간 한 토막, 그리고 뒤따라오다가 유수 동쪽에 그대로 처져 있게 된 한 토막이었다.

앞서 한군을 뒤쫓던 용저는 겨우 황톳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면한 초나라 군사 3만과 함께 유수 서쪽에 남겨졌다. 그러나 아직도 불어나는 물결이 너무 거세 강가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그때까지 달아나기만 하던 한나라 군사들이 일제히 돌아서서 덤비기 시작했다.

“겁낼 것 없다. 적은 얼마 되지 않는 잡병이다. 단숨에 쳐부수고 한신을 사로잡자!”

용저가 그렇게 외치며 앞장을 서자 초나라 장졸들도 이내 기세를 되찾았다. 저마다 힘주어 창칼을 꼬나 잡고 한군에 맞서 싸웠다. 그런데 다시 어우러진 싸움이 막 열기를 띨 무렵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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