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71>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9월 2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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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사수(5水)는 사수현(縣) 동남 30리 되는 곳에 있는 방산(方山)에서 발원하여 서북으로 하수(河水=황하)에 합쳐지는 강물이다. 하수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성고(成皐) 동쪽을 흐르는데, 그때는 제법 물이 깊고 넓었다.

한(漢) 4년 10월 중순 한동안 오창의 곡식으로 배불리 먹고 편히 쉰 한나라 군사들은 갑자기 사수를 건너 성고성을 에워쌌다. 한왕 유방이 몸소 앞장을 선 5만 대군이었다. 그러나 한왕이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성고성을 지키는 조구(曺咎)는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지킬 뿐 성을 나와 싸우려 들지 않았다. 전서(戰書)를 띄우기도 하고 군사들을 시켜 욕을 퍼붓게도 해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초나라 군사들이 성을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한왕은 마침내 전군을 들어 성고성을 들이쳤다. 이래저래 사기가 올라 있던 한나라 군사들이라 성벽을 기어오르는 기세가 자못 사나웠으나 조구와 사마흔 동예는 성안 군민들을 이끌고 흔들림 없이 잘 막아냈다. 다시 닷새가 지나도 적지 않은 한나라 군사만 잃었을 뿐 성고성은 끄덕도 않았다.

“저것들이 어찌된 일이냐? 군사도 많지 않아 보이고 항왕도 없는데 어찌 이렇듯 거세게 뻗대느냐?”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한왕이 탄식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곁에 있던 장량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성벽 위를 바라보며 받았다.

“항왕이 떠나면서 조구에게 함부로 싸우지 말고 굳게 지키기만 하라고 단단히 당부한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함께 성을 지키는 사마흔과 동예는 바로 새왕(塞王)과 적왕(翟王)으로 모두 대왕께 한번 항복했던 자들 아닙니까? 다시 사로잡혀서는 용서받기 어려울 것을 알고 죽기로 조구를 돕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함께 있던 진평이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성안에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것도 많겠지요. 잃으면 장졸을 가리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만큼 귀하고 값나가는 것들이.”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한왕이 진평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그렇게 물었다. 진평이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지나가는 말처럼 대꾸했다.

“듣기로 항왕은 지난번 대왕께 도읍인 팽성을 잃어본 뒤로 왕궁을 군막(軍幕)에 담아 다닌다고 합니다. 그동안 얻은 금은보화는 말할 것도 없고 피붙이와 미녀까지도 패왕의 군막과 함께 움직이다가 싸움터와 가장 가까운 성으로 옮겨 가장 믿을 만한 장수에게 지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고성과 조구가 바로 그 성과 장수인 셈이지요.”

“그럼 이번에는 왜 항왕을 따라 양(梁) 땅으로 옮겨가지 않았는가?”

“항왕이 그만큼 팽월을 가볍게 본 탓이겠지요. 성안에서 흘러나온 말을 들어 보니 항왕은 조구에게 보름을 기한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곧 보름 안으로 자신이 돌아올 것이니 그때까지만 버티라고 당부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한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탄식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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