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어서라도 한국 가서 고발하리라”

  • 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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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북한 당국의 고문 끝에 두 발을 잃은 여성 탈북자 박모(41) 씨가 재(再)탈북에 성공해 태국에 도착한 뒤 한국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박 씨는 의족과 목발에 의지한 채 걷거나 기어서 중국 미얀마 라오스 국경을 차례로 넘었다니 그가 겪었을 고통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무엇이 그를 이런 극한 속에 몰아넣었을까.

박 씨는 국내 인권단체에 보낸 편지에서 “내가 지른 비명소리, 내가 토한 신음소리는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 부모 형제들의 비명소리 신음소리”라면서 “걸어서 못 가면 기어서라도 한국에 가 김정일 체제의 인권 유린과 죄악을 고발하겠다”고 썼다.

박 씨는 2000년 아들과 함께 1차 탈북에 성공했으나 지난해 1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송(北送)됐다. 북한 보위부원들은 “종아리까지 썩어 문드러져야 다시는 탈북하지 않을 것”이라며 동상에 걸린 박 씨의 발을 쇠꼬챙이로 찌르고, 족쇄를 채운 발가락을 구둣발로 짓밟았다고 한다. 만신창이가 된 채 풀려난 그는 같은해 9월 재탈북에 성공했지만 중국에서 두 발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지구상에 이런 지옥이 또 있을까 싶다.

정부의 늑장 대응은 여전했다. 태국 현지 공관이 박 씨의 사연을 접수한 게 1주일 전인데 외교통상부는 어제서야 “현지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탈북자의 기막힌 사연이 공개된 뒤에야 허둥대는 무신경과 무성의를 언제까지 보아야 하나. 일본 정부는 박 씨와 동행한 재일교포 출신 탈북자에게 즉각 필요한 조치를 약속했다고 하니 더 부끄럽다.

북한 주민의 인권 참상은 더는 구경만 할 수 없는 문제다. 6자회담 타결로 북핵 위기의 불길이 잡혔다고 해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정부는 북한 눈치만 보지 말고 이제는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해외 공관의 탈북자 지원체계 개선도 시급하지만 근본적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방침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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