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참여’정부의 속살 보여준 ‘전문가 입막기’

  • 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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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조성한 교수는 자신이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하려던 연구 내용에 대해 정부 측의 삭제 압력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그는 9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규제개혁 심포지엄을 통해 노무현 정부 규제개혁의 잘잘못을 지적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무조정실 산하 규제개혁담당관실 관계자가 일부 내용에 대한 삭제를 요구하는 바람에 발표를 취소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은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을 수정하라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조 교수는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에 대한 삭제 압력을 받았음을 분명히 했다.

전문가들의 쓴소리에 대한 정부와 여권(與圈)의 ‘제동’ 또는 ‘응징’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두 달 전 통일연구원에서 징계를 받고 사직한 홍관희 전 선임연구위원은 “6·15 남북공동선언을 비판한 글을 외부에 기고하자 정부 고위층이 불쾌감을 표시해 왔다”고 했다. 최광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은 지난해 “정부의 노동·교육·언론정책 등은 반(反)시장적”이라고 비판한 뒤 면직됐다. 한국국방연구원의 김태우 연구위원은 2003년 초 대통령 당선자의 안보 개념을 비판한 것으로 외신에 보도된 뒤 징계를 받았다.

대학교수조차 국정(國政)과 정책에 대한 연구 결과를 자유롭게 발표할 수 없다면 활발한 정책 공론(公論)의 형성이 어려워진다. 정권이나 정부의 입맛에 맞는 ‘어용(御用) 논리’와 ‘현실 왜곡’이 판을 칠 우려가 커진다. 결국 국정의 잘잘못이 제대로 검증되고, 문제점이 시정될 가능성이 줄어든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기관도 정권에 봉사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연구 결과를 제시해 국정과 정책의 왜곡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권과 정부의 ‘코드’에 맞지 않는다고 이를 억누른다면 ‘연구시장’이 위축되고 결국 정책의 편향성을 자초할 소지가 크다.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고 참여정부를 표방하는 정권이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행태를 답습하는 듯한 양상이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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