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東海’ 팽개친 홍보처

  • 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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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자에게서 ‘우익(右翼) 퇴치’ 비법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일본 지식인과 기자들이 진보적인 의견을 내고 나서 골머리를 앓는 게 우익의 항의다. 그런데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작고)를 인용하면 아무리 격하게 우익을 비판해도 입을 다물고 만다는 것이다. 메이지(明治)유신을 미화하고, 일본적인 미의식, 일본인의 근면 정직성, 인걸들의 영웅적 면모를 많이 그린 시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익은 같은 편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시바가 발굴한 영웅이 바로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라는 메이지시대 열혈 청년이다. 한말 개화기의 김옥균에 비교할 만한 풍운아다. 서른두 살에 암살당해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일왕 중심의 권력 재편에 기여하고 최초의 종합상사를 만들었다는 인물이다. 시바의 ‘료마가 간다’는 소설이 한 평범한 청년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료마는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 인물이 됐다.

▷료마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는 넓은 세계를 가르치기 위해 세계지도를 펼쳐 보인다. 그의 고향 고치(高知)에 있는 기념관에선 그 장면을 재현하는 필름을 상영한다. 놀랍게도 그 일본 고지도에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바다는 ‘조선해(朝鮮海)’라고 크게 적혀 있다. 그러므로 만일 일본 사람과 동해 논쟁이 벌어지면, “당신네 나라의 료마가 보고 배운 지도에도 ‘조선해(동해)’였지 ‘일본해’는 아니었다”고 말해 볼 일이다. 일본인들이 입을 다물고 말 ‘일본해’ 퇴치의 비법이 되지 않겠는가.

▷영국 국립도서관의 고지도 90점 가운데 64점이 동해로 표기돼 있다. 특히 18세기 이전에 나온 지도는 동해(고려해)가 압도적이다. 그러다 19세기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부터 일본해가 많아지고 그런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지금도 우리는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국정홍보처가 국내의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면서 몇 달째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를 써 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웃어넘길 수 없는 심각한 반(反)홍보다. 제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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