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64>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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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하지만 평원성이 떨어지고 화무상이 사로잡힌 터라 적은 속으로 적잖이 겁을 먹고 있을 것이오. 그렇게 겁먹어 다급해진 적의 속마음을 이용하면 우리 군사를 크게 상하지 않고 역성(歷城)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외다.”

그런 한신의 말을 관영이 아무래도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받았다.

“그 사이 임치(臨淄)에 우리가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가면 어쩌시겠습니까? 제왕(齊王) 전공과 상국 전횡이 방비를 굳게 하면 남은 싸움이 정말로 어려워질 것입니다.”

한신이 마침 잘 물어 주었다는 듯 정색을 하고 관영을 보며 말했다.

“그러잖아도 장군에게 그 일을 부탁하려던 참이었소. 장군께서는 이제부터 날랜 기마를 동남쪽에 풀어 임치로 가는 길목을 모두 막으시오. 성안의 적군이 제풀에 다급해져 임치로 구원(救援)을 청하는 날이 바로 이 역성이 떨어지는 날이 될 것이오. 장군께서 그 사자(使者)만 잡아 오신다면 다음 계책은 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소.”

무얼 믿고 하는 소린지 그렇게 말하는 한신의 얼굴에는 자신이 가득했다. 조참과 관영도 그런 한신을 보고 조금 마음이 놓였다. 각기 진채로 돌아가 한신의 명을 따랐다.

그날부터 한신은 연일 역성을 에워싸고 들이쳤으나, 요란한 것은 소리와 시늉뿐이었다. 멀리서 활이나 쏘아 대거나 방패를 앞세운 군사들을 시켜 성문을 불사르려는 척하며 성안의 적군에게 겁만 주었다. 하지만 성안에 갇혀 있는 제나라 군사들은 날이 갈수록 기가 죽고 어지러워졌다.

굳게 지키고는 있어도 마음이 흔들리기는 전해(田解)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잘 버텨 내는가 싶더니 끝내 견디지 못해 부장(部將)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말했다.

“아무래도 임치에 이 소식을 알리고 구원을 청해야겠다. 누가 에움을 뚫고 나가 이 소식을 임치에 전하겠느냐?”

그러자 젊은 부장 중에 하나가 나서 말했다.

“제가 한번 가 보겠습니다. 오늘밤 삼경 무렵 빠른 말 여남은 기로 북문을 가만히 빠져나가 얼어붙은 제수(濟水)를 끼고 달리면 사흘도 안돼 임치에 이를 수 있습니다. 반드시 대왕께 이곳의 위급을 전하고 원병(援兵)을 얻어 돌아오겠습니다.”

“좋다. 나는 오늘밤 삼경 동문으로 한 갈래 군사를 내어 적의 진지를 야습할 터이니 너는 그 틈을 타 북문으로 나가거라. 역성이 임치의 구원을 입어 이 위급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모두 너의 공이다.”

전해가 제법 머리를 써서 그런 계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은 공연히 다급해 서둔 그 계책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다. 그날 밤 삼경 전해는 군사 3000을 내어 동문 쪽에 있는 한나라 진채를 야습했으나, 한나라 진채가 워낙 성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펼쳐져 있어 뜻과 같지 못했다. 한군 진채에 닿기도 전에 벌써 그 움직임이 들켜 하마터면 3000 군사를 모두 잃을 뻔하였다.

“그래도 임치로 가는 사자가 북문으로 빠져나가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며칠만 기다리면 원병이 온다.”

전해가 그렇게 스스로 위로를 삼았으나 실은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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