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592년 佛사상가 몽테뉴 사망

  • 입력 2005년 9월 13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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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타인의 어리석음을 비웃는 자기 자신을 비웃는다. 자신조차 제물로 삼아 마음껏 조롱과 야유를 퍼붓는다. 쓴웃음을 자아낸다.

그의 글에는 파스칼이 경멸했던 천박함마저 가득하다. “피타고라스의 며느리는 말했다. 여자가 남자와 잘 때 옷과 함께 부끄러움도 벗어야 한다. 그리고 옷을 입을 때 부끄러움도 다시 입어야 한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정점이자 프랑스 모럴리스트 문학의 원천을 이루는 몽테뉴.

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험악한 시대를 살았다. ‘거룩한 학살’과 인간 사고의 비극으로 점철된 16세기는 광신적 종교전쟁의 시기였다. 부조리와 비합리성이 노출된 ‘관절이 어긋난’ 시대였다.

그는 이러한 때에 인간 본성을 통찰하기 위해 ‘밖’이 아니라 ‘안’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자신을 알 수 없다면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근대적 에세이 장르의 효시가 된 그의 대표적 저작 ‘레제세(Les Essais·수상록)’는 이렇게 시작된다. “독자여, 나 자신이 이 책의 내용이다!”

‘레제세’는 회의주의적 사색의 이정표였다. 크세주(Que sais-je)?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나를 심판하는 나 자신의 법률과 법정을 갖고 있다. 나는 어느 곳보다도 자주 그 법정에 드나들었다.”

과도한 지성과 정신을 경계했던 몽테뉴. 그에게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것은 위험한 유혹이었다.

그는 기독교의 구원도 원죄도 믿지 않았다. 천당도 지옥도 무시했다. “천사로 변신하려다 짐승이 된다!” 1676년 ‘레제세’는 교황청 금서 목록에 오른다.

18세기에 볼테르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모든 지적 권위에 맞서 싸웠고, 페스탈로치에 앞서 자유로운 아동교육을 말했던 몽테뉴. 그는 헤르더 이전에 민중문학을 세우고, 루소 이전에 자연에의 회귀를 노래한 프랑스 혁명의 선구자였다.

그는 자신을 맹렬하게 비판했던 파스칼에게조차 가장 큰 스승이었다.

근대가 들끓던 시기에 쓰인 ‘레제세’는 놀랍게도 탈(脫)근대적인 덕목들을 빚어낸다. 타자의 포용, 다름의 가치, 다양성 존중, 문화적 상대주의, 열림의 정신과 실천….

평생 ‘자기 자신과의 우정(友情)’을 버리지 않았던 그의 자화상은 인류의 자화상으로 확대된다. 그의 성실한 자아 탐구는 타자를 향해 멀리 뻗어 나간다.

한마디로 “인간인 것, 이것이 그의 직업이었다!”(생트뵈브)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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