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盧대통령의 ‘꽃놀이패’

  • 입력 2005년 8월 11일 03시 08분


코멘트
공교롭게도 박정희 이후 역대 대통령은 ‘정보통(通)’이거나 ‘정보 마니아’였다.

여수·순천 10·19사건에 연루돼 1948년 말 군복을 벗은 박 전 대통령은 군 지휘관으로 복귀하기까지 2년 동안 문관으로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일했다. 그가 6·25전쟁 직전 북한군의 남침 징후(徵候)를 포착해 상부에 보고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60년대 초 중앙정보부에 파견돼 근무했고 1979년 10·26사건 때는 국군보안사령관이었다. 막강한 보안사의 정보망(網)이 없었다면 신(新)군부의 ‘12·12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60년대 방첩부대 정보장교로 근무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보안사령관을 지냈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욕하면서 배운’ 경우다. 이들은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하면서 정보가 힘이라는 것을 체득(體得)했다. YS는 1993년 집권하자 정보기관 개혁을 명분으로 정치학자 김덕 교수를 국가안전기획부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권력 실세들의 입에서 “국내 정치 정보가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1년 뒤 도청 조직인 ‘미림’팀이 재건된 것은 이 때문이다.

DJ는 집권하자마자 ‘도청 근절’을 강조했지만 국가정보원장의 정기적인 독대(獨對) 보고와 대통령 책상 위에 올라가는 ‘A보고’는 변함없이 유지됐다. 야당 동향 파악도 중요했다. 최고 권력자가 이런 ‘수요(需要)’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불법 정보 수집을 하지 말라고 정보기관에 지시했다고 해서 통할 리 만무했다. 당시 국정원 고위 간부조차 개인적으로 지인을 만날 때는 도청을 피할 수 있는 곳만 약속 장소로 잡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노무현 대통령은 정보기관이 제공하는 정보에 ‘중독(中毒)’되지는 않은 듯하다. 정치권의 비주류였던 만큼 정보의 ‘맛’에 길들여질 틈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집권하자마자 국정원장의 독대 보고도 없앴다.

이런 점에서 도청 테이프 정국은 노 대통령에게는 손해 볼 것 없는 ‘꽃놀이패’인 셈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70%의 찬성 여론’을 앞세워 국정원 도청 테이프의 공개 필요성을 강조한 후 인민재판식 흑백논리마저 나타나고 있다. ‘불법 수집된 도청 내용 공개는 법 논리상 위헌이다’ ‘도청 테이프가 공개되면 공동체의 틀이 깨질지 모른다’는 견식 있는 목소리가 만만찮은데도 여권 일각에서는 테이프 비공개 주장에 대해 “구린 데가 있느냐”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공세를 취하고 나온다.

노 대통령은 ‘헌법 체제를 가장 존중하지 않는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재작년 말의 재신임 파동, 작년의 탄핵심판으로 이어졌던 선거개입 발언, 최근의 연정론(聯政論) 등 꺼내는 정치적 화두(話頭)마다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문제는 둘 다 위헌소지를 안고 있는 여당의 특별법과 야당의 특검법이 정면 충돌하는 작금의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 노 대통령밖에 없다는 점이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있을 때 ‘이득’을 버리는 것이다. 손해를 보면서도 원칙을 지켰다는 이유로 한때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노 대통령이다. 그에게 ‘헌법의 수호자’로 남을 결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