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대근]둔마장관, 그 후 30년

  • 입력 2005년 7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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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기막힌 세월’이었다. 1970년대 신문을 보면 지금도 숨이 막힌다. 1974년 10월 31일자 동아일보는 ‘대학 당국이 스스로 학원 소요를 수습하지 못하면 학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당시 문교부 장관의 회견 내용을 1면 주요 기사로 다루고 있다. 이 기사에는 ‘계고장(戒告狀) 발부’ ‘휴업령(休業令)’ 등의 살벌한 용어가 등장한다.

유신(維新)독재가 온 나라를 짓누르고 있던 그해 9월 문교부 장관으로 발탁된 그는 대통령 앞에서 “이 둔한 말에게 채찍질을 가해 달라”고 말해 ‘둔마(鈍馬) 장관’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한다’는 주마가편(走馬加鞭)에서 주마를 둔마(鈍馬)로 바꿔 대통령을 받들고 나섰으니 화제가 되고도 남았다.

최근 2008학년도 대학입시 기본계획을 둘러싸고 당정(黨政)이 일사불란하게 서울대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면서 ‘30년 전의 희화(戱畵)’가 떠올랐다. 그때는 대통령이 긴급조치권을 갖고 입법부와 사법부도 쥐고 흔든 초헌법적 상황이었으니 ‘처분만 기다리겠다’는 장관의 굴신(屈身)을 그러려니 하고 접어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것일까. 명색이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의 한마디에 서울대가 하루아침에 ‘공공의 적’이 됐으니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대 입시안은 나쁜 뉴스”라고 운을 떼자 열린우리당과 교육인적자원부는 곧장 당정협의를 갖고 ‘초동진압’ 운운하며 ‘전면전’을 선포했다. 하도 서슬이 퍼래 초장에는 ‘통합형 논술은 본고사가 아니다’고 변명할 틈도 없어 보였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을 만든 정당이니 백번 양보해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교육부의 모양새는 민망하기 짝이 없다. 단지 교육부가 덩달아 서울대를 몰아쳤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유가 분명하고 논리가 한결같다면 그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둘러대기에 바빴다.

석 달 전으로 돌아가 보자. 내신 위주의 2008학년도 입시안에 부담을 느낀 고교 1학년 학생들이 중간고사 기간 중 잇따라 자살하고, 파문이 확산돼 촛불시위로 이어지자 교육부는 “내신은 전형자료의 하나일 뿐이며 실질 반영률도 높지 않다”고 진화에 나섰다.

교육부는 서울대와 주요 사립대가 논술 비중을 높이기로 한 데 대해서도 처음에는 긍정적이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입시안을) 들여다보니 상당히 좋더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뒤 대통령이 내신과 공교육을 들고 나오자 금세 입장을 바꿔 맞장구를 쳤다.

김 부총리가 누구인가. 노 대통령이 ‘가장 유능한 공무원’으로 꼽았던 인물이다. 그저 고분고분하다고 그런 평가를 내린 건 아닐 것이다. 평등주의에 매몰된 일부 시민단체와 여권인사들의 전방위 압박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정말 유능한 공무원’이라면 자리를 걸고 소신과 명분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김 부총리에게 묻고 싶다. 40년간의 평준화 정책이 ‘10년 불황’을 불렀다는 일본 교육계와 재계의 반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창의적인 학생을 뽑겠다는 서울대의 입시안이 과연 ‘몰매’를 맞을 일인가.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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