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정보]KBS 사장의 ‘정치적 해명’

  • 입력 2005년 4월 20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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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3층 회의실. 정연주(鄭淵珠) 사장을 비롯해 부사장 본부장 등 10여 명의 간부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기자회견 주제는 본보 20일자 A2면에 보도된 기사 ‘수신료는 눈먼 돈-KBS 공금 유용 심각’에 관한 것이었다. 이 사건 외에도 최근 사측의 노동조합 회의 불법녹음, KBS2 TV ‘생방송 시사투나잇’의 한나라당 의원 누드 패러디 등 악재가 잇따라 터진 상황이라 회견장엔 긴장이 감돌았다.

정 사장은 “우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백배사죄한다”고 운을 뗀 뒤 각 사안에 대한 해명을 차례로 해 나갔다.

그는 ‘간부의 안마시술소 출입’ 등 몇 가지 부적절한 용어가 국민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2년 5월부터 2004년 3월까지 차장급 이상 간부 1747명이 쓴 법인카드를 감사한 결과 카드사용액 81억6000만 원 중 “불과 0.001%도 안 되는 1300만 원만 사적 용도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며 KBS의 투명성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큰 사과나무에 일부 썩은 사과가 몇 개 있을 뿐”이라고도 했다.

해명을 어느 정도 마친 정 사장은 오히려 이번 사안에 대해 정치적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지난해에도 감사팀의 자료가 똑같은 국회의원에게 유출됐고, 국회 결산감사나 국정감사 직전에 KBS의 비리를 들춰내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기자회견은 점차 맥이 빠져가고 있었다. 그 정도라면 자료만 내도 될 터인데 왜 굳이 기자회견을 열었느냐는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해명도 완벽하지 않았다. 정 사장은 한 특파원의 회사공금 300만 원 유용 건에 대해서는 아직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회견 말미 정 사장은 왜 기자회견을 황급히 가졌는지 속내를 드러냈다.

“21일 국회에서 KBS 결산 감사가 열린다. 국회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해명을 하고 싶어도 충분한 시간이 없을 것 같다.”

정 사장은 감사팀 자료 유출에 대해 ‘정치적 의혹’을 제기했지만 그의 기자회견 역시 ‘정치적 해명’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서정보 문화부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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