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공단, 안티연금 운동가 신상정보 '무더기 열람' 논란

  • 입력 2005년 4월 12일 14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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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9살 연상의 아내하고 사는 것을 어떻게 아세요. 제 호적등본이라도 봤나요?”

국민연금관리공단(이하 공단) 직원 수십 명이 돌아가며 한 국민연금 가입자의 개인신상정보를 열람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평소 안티 국민연금운동을 벌여온 박형두(39·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씨는 지난해 10월 공단을 방문했을 때 직원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박씨는 “당시 직원들이 내가 9살 연상의 부인과 결혼해서 산다는 둥 개인 사생활에 대해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면서 “내 개인정보를 열어봤다는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직원들을 다그쳤고 일부에게서 “업무와 무관하게 개인정보를 봤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박씨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누가, 왜, 몇 차례나 열람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1월 공단에 '개인정보열람기록' 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공개 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박씨는 곧바로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이하 위원회)에 공단의 정보공개거부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여 최근 열람기록을 공개하라고 결정했다.

위원회는 결정문에서 “(직원)개인에 관한 정보라도 공익 또는 개인의 권리규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하도록 돼있다. 직무를 수행한 공무원의 성명·직위를 공개하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단은 이달 초 박씨의 '개인정보열람기록'을 공개했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다.


기록상 지난해 10월11일부터 올해 1월11일까지 3개월간 7개부서 41명의 직원이 74회에 걸쳐 박씨의 개인정보를 열람했던 것.

박씨는 “개인정보에는 가족관계는 물론 재산상황, 소득, 차량, 주민번호 등 나에 관해 없는 것이 없다”면서 “소중한 정보들을 그 많은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봤다니 소름이 끼친다”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민원부서도 아닌 직원이 왜 봤냐’고 물었더니 ‘그냥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봤다’고 하더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그는 공단이 공개한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정보를 봤다고 내게 고백한 직원들의 이름이 빠져있고, 열람기간도 3개월이 아니라 내가 안티 국민연금운동을 시작한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약 10개월간”이라며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면 개인정보 열람은 최소한 150회가 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직원들이 마음대로 보고 비웃으라고 내 개인정보를 공단에 제공한 것은 아니다”면서 “공단에 열람기록의 원본 공개를 요청하고,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본 공단과 직원들을 사법기관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박씨가 안티 국민연금운동을 벌여 민원처리 차원에서 개인정보를 열람했다”며 “업무의 일환이지 전혀 사적인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관계자는 또 “다른 안티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며 “업무처리 차원에서 직원들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언제라도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고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이은우 변호사는 “철저히 보호돼야할 개인정보를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봤다면 인권침해와 법률위반에 해당된다”며 “더욱이 개인의 사생활을 열람하고 이를 공공연히 입에 올렸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고 지적했다.

한편 박씨 이외에도 현재 10여명이 같은 이유로 행정심판을 청구한 상태라 파문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조창현 동아닷컴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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