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기범]양의-한의 갈등, 의료표준화로 풀자

  • 입력 2005년 3월 1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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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양의(洋醫)와 한의(韓醫) 간 국내 의료분쟁이 또다시 불거지자 텃밭 싸움이니, 밥그릇 싸움이니 하는 얘기들이 예외없이 나왔다. 분쟁 대상이 감기였다니 그 분석이 수긍이 가기도 했다.

합병증 없는 감기는 별다른 치료약이 없으니 굳이 의사에게 가야 할 필요가 없고, 미열 및 두통은 아스피린이나 탕약을 달여 먹든 냉수 찜질을 하든 전적으로 환자 자신의 자유요 책임이다. 이처럼 간단한 문제가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니….

지난 20여 년 동안 의학지식과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고, 이에 동반하여 진단과 치료가 복잡해지고 의료비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미국의 경우 1년 의료비가 우리나라 전체 국가 예산의 10배가 넘는다. 이런 고가 서비스에 대해 국가와 국민이 최고의 품질 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한의사 측이 ‘감기를 한방으로 다스리자’는 포스터(왼쪽)를 내걸자 양의사 측이 ‘한약복용시 주의하십시오’라는 포스터를 배포해 의료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필자는 미국에서 30여 년간 의사생활을 했다. 미국 의료계는 1990년대를 ‘표준화를 위한 10년(Decade of Standardization)’이라고 부른다. 의료의 품질을 잴 수 있는 잣대를 만들어 이제는 완전한 틀이 잡혔다. 병원과 병원을 비교할 수 있고, 의사와 의사를 비교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의료행위에 대해 ‘증거 위주 의료’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현대 의학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아직 우리는 표준화작업도 이루지 못한 것 같다. 가끔 TV의 교양프로그램을 보면 원인도 치료 방법도 모르는 많은 질병이 쉽게 예방되고 치료가 된다. 누가 어떻게 인증한 ‘전문가’인지 알 수 없는 전문가가 너무 많다.

의학은 과학이다.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지 그 중간은 없다. 그 중간을 ‘가설’이라 하겠는데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공인된 지식과 혼동하는 수가 많다. 그래서 “나는 안 믿는다” “나는 이렇게 한다”는 등의 표현을 자주 듣는다. 증거 위주의 의료에서는 이런 표현은 용납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증거이지 내가 믿고 안 믿고, 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의료분쟁은 의사들의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어서는 안 된다. 의료는 우리 전체 국민의 건강과 목숨이 달린 문제다. 양의도 한의도 궁극의 목적은 효율적이고 경제적이고 안전한 질병 치료와 국민 건강 유지에 있다. 현대문명과 함께 발전해 온 양의학을 이 땅에서 없앨 수 없고, 우리의 유구한 역사만큼 오래된 한의학을 없앨 수도 없다. 그들은 공존해야만 할 운명이다. 그렇다면 서로 협력하고 의견을 교환하고 함께 연구하여 현대문명에 부합되는 ‘한국적 양한의(洋韓醫) 협진체제(協診體制)’의 개발이 필요하다.

그 첫 단계로 전체 의료계와 정부가 ‘의료의 표준화’에 하루 속히 합의하는 것이 의료분쟁 해결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기범 가천의대 교수·산부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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