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당신이 아이 낳고 기를 자신 있나”

  • 입력 2005년 3월 2일 18시 06분


장수(長壽)시대에 지금 같은 출산기피 현상이 이어지면 2020년경엔 노인인구 급증과 노동력 부족으로 안정적 경제구조가 무너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세계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출산율을 걱정하는 가운데 ‘젊은 여성들이 이기적이라 아이 낳기를 싫어하니 큰일’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많은 여성들은 “당신들은 아이 많이 낳고 잘 기를 자신 있느냐”고 되묻고 싶다는 반응을 보인다.

출산과 양육을 여성만의 문제로 돌려서는 인구문제도, 경제문제도 결코 풀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선 이 중대한 일을 여성들 개인에게 떠맡기는 데서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현재 영아와 유아 열 명 가운데 네 명은 엄마가 일하는 동안 맡길 곳이 없다. 국가의 보육비용 분담률은 37%에 그치고 있다. 사정이 좀 다르긴 하지만 스웨덴은 83%, 일본은 53%를 국가가 부담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 “아이, 마음 놓고 낳으십시오. 노무현이 키워드리겠습니다”라고 공언했다. 실상을 보면 차라리 잊고 싶은 공약이다. 정부가 아동 수당제, 출산 축하금제 등 출산장려책을 검토하고 있다지만 이 수준의 ‘전시행정’으로 아이를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낳을 용기가 생길지 의문이다.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면 직장이나 개인적 삶을 포기해야 될 만큼 출산은 여성들에게 심각한 선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민법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호주제가 폐지되고, 부부가 합의하면 자식이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을 수 있게 되는 등 여권(女權)이 법적으로는 크게 신장될 전망이다. 그러나 여성의 출산과 육아 부담도 함께 사라지는 건 아니다. 출산과 육아와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근본적 정책전환을 하지 않고는 여성들의 ‘출산 파업’과 이에 따른 경제 위축을 막을 수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