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거 盜聽’ 사과로 넘길 일 아니다

  • 입력 2005년 2월 10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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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이정일 의원의 선거운동원들이 불법 도청(盜聽)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심부름센터 직원을 시켜 접전(接戰)을 벌이던 열린우리당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놓고 4일간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사건 당사자 3명을 구속한 데 이어 이 의원의 소환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도청은 문명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추악한 범죄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런 범죄가 공정하고 민주적이어야 할 선거에서 자행됐다니 놀랍다. 정치의 시계를 공작정치가 횡행했던 권위주의 시절로 되돌려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새 선거법 시행으로 어느 때보다 깨끗해졌다는 평을 받은 총선이었는데 수십 건의 금품살포, 흑색선전, 허위신고에 이어 불법 도청까지 불거졌으니 국민의 실망 또한 클 것이다.

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공식 사과했지만 정작 이 의원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황당해 하는 반응이라고 한다. 사건 당사자들도 한결같이 이 의원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설령 이 의원 모르게 진행된 측근들의 과잉충성일지라도 이 의원의 책임이 가벼울 수는 없다.

검찰은 어느 선에서 지시가 있었고, 도청은 어떻게 진행되고 활용됐는지, 자금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등 도청 전모를 샅샅이 밝혀내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 이 의원은 국민 앞에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다만 여당은 과반의석 붕괴 위기, 민주당과의 합당설 등 최근의 미묘한 정치적 상황과 관련해 이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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