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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0월 17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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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 때마다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다. 정책 방향을 가늠할 때 방송위는 ‘종속 변수’라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이 말은 사실이다.
최근 방송위는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의 지상파 재전송(실시간 방영)에 대해 “지상파 DMB가 시작될 때 재검토한다”며 결정을 유보했다. 지상파 노조와 언론운동단체들은 이전부터 “재전송을 허가하면 방송위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방송위는 지난해 2월 위성 DMB 사업 추진 발표 때부터 예상됐던 사안인데도 ‘무소신’을 드러냈다. 방송위가 노조에 밀려 뉴미디어 정책의 밑그림을 못 그린다는 학계의 지적이 이어졌다.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의 지상파 재전송이나 지상파 디지털의 전송 방식 문제도 지상파 노조의 반대로 발목이 잡혔었다. 3년간의 표류 끝에 최근 지상파를 재전송할 수 있게 된 스카이라이프는 그동안 400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한다.
디지털 전송 방식도 1998년 정부가 미국식으로 결정했는데도 지상파 노조의 반대로 방송위에서 계속 맴돌았다. 최근 당초 결정으로 돌아갔지만 그 사이 연관 산업의 제자리걸음으로 피해가 수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노조는 유럽식을 주장했으나 이면에는 일자리 축소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방송위가 7월 지상파의 탄핵 방송 편파 여부에 대한 심의를 포기한 것도 지상파 노조의 공세에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준다. 특히 탄핵 방송의 편파성을 지적한 한국언론학회의 보고서가 나온 직후, 이효성 방송위 부위원장은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내는 미디어오늘의 인터넷판에 반박문을 기고했다. 그는 탄핵 방송 분석을 학회에 의뢰했던 장본인이다.
그런데 방송위가 뚝심을 보여 준 사례가 있다. SBS의 사업 재허가와 관련해 민영방송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요구한 게 그것이다. 방송위는 ‘소유 경영 분리’와 방송의 공영성의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못하면서 SBS에 이를 요구해 상당 부분 관철시켰다. 방송위의 주장은 “SBS가 전파를 사유화한다”고 한 언론운동단체와 노조의 비난과 일치했다.
방송위는 또 친노(親勞) 성향의 시민방송(RTV)에 2년간 48억7000만원을 지원했다. 한겨레신문의 논조를 일방적으로 전달해 온 이 채널의 9월 평균 시청률은 0.001%(TNS미디어코리아 조사)다. 노성대 방송위원장은 뒤늦게 이번 국정감사에서 “방송 내용에 문제가 있다. 시정하겠다”고 답했다.
이쯤 되면 방송위는 지상파 노조의 대변 기구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방송위가 이들의 자사이기주의를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대통령이 추천한 3명을 포함해 친여 인사가 과반수를 차지한 방송위가 친정권 성향의 노조와 장단을 맞추겠다는 것일까.
한 방송위원은 “지상파 노조와 시민단체의 등쌀에 못해 먹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딱하지만 그 직위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더 딱한 것은 소신과 전문성이 부족한 3년 임기의 방송위원들을 위해 자료와 보고서를 생산하는 방송위 사무처 직원들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방송위에 대해 “초보 운전자들이 대형 트럭을 모는 꼴”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시청자들의 심경은 더 안타깝다. 그런 방송위원들에게 제 돈(세금)으로 장차관급 대우를 해주며 정책권을 위임하고 있으니 말이다.
허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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