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지금은 경제야” 호주 총선의 교훈

  • 입력 2004년 10월 12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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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전에서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 진영은 이 슬로건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측을 한 방에 잠재웠다. 선거 중반까지만 해도 걸프전 승리를 앞세운 부시 대통령은 아칸소 주지사 출신의 ‘촌뜨기’ 클린턴 후보를 가볍게 누르는 듯했다.

부시 대통령은 유세 때마다 세계 평화의 파수꾼으로서 미국의 자존심을 되살린 자신의 공을 과시했다. TV토론에서는 클린턴 후보를 지칭해 “국제무대의 애송이가 어떻게 미국의 영광을 이끌 수 있겠는가”라고 공격했다.

클린턴 진영은 이에 맞대응하지 않고 10년 전보다 먹고살기 힘들어졌다고 아우성치는 서민들을 파고들었다. ‘지금은 하나라도 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유권자를 설득했다. 경제가 먼저 안정돼야 ‘고귀한 이념’도 실천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주연 배우와 장소만 다를 뿐 비슷한 현상이 9일 호주 총선에서 나타났다. 이번엔 집권자가 경제 살리기를, 도전자가 세계평화와 평등가치 실현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43세의 마크 래덤 노동당수는 ‘성탄절까지 이라크 파병 호주군 철수’를 내세우며 4번째 연임을 노리는 존 하워드 총리를 거세게 밀어붙였다. 젊은 층과 진보진영은 ‘자유’와 ‘평화’를 외치는 래덤 후보에게 열광했고, 노동자들은 ‘부의 공평한 분배’를 약속하는 그에게 신뢰를 보냈다.

상당수 여론조사도 래덤 당수의 승리를 점쳤다.

시종일관 “여러분에게 좀 더 안락하고 안전한 삶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약속만 되풀이하는 65세의 노정객 하워드 총리에겐 환호나 열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막상 선거는 자유당을 주축으로 한 보수연합이 하원 전체 150석 중 반수가 훨씬 넘는 87석을 차지해 하워드 총리의 완승으로 끝났다.

애덤 스미스의 ‘가족과 마주앉은 시민은 어떤 가치보다 경제적 번영과 안정을 원한다’는 금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 같다.

김동원 국제부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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