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재창]‘소모성 國監’ 이번엔 벗어날까

  • 입력 2004년 10월 1일 18시 30분


과거와는 다른 모습의 국정감사를 선보이겠다고 여야 모두가 벼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말로 한 단계 성숙한 국감을 하려면 먼저 국감을 보는 국회의 눈 자체를 바꿔야 한다. 국감은 행정집행상의 위법성 여부나 능률성 정도를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라, 입법 의도대로 행정부가 정책 사업을 구상하고 이를 집행해서 소기의 성과를 낳고 있는지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그런 만큼 국감은 행정부의 기획능력을 평가하는 작업인 셈이다. 그게 아니라면 구태여 국회가 나서야 할 이유가 없다. 행정 행위의 적법성 여부나 능률성 정도를 검토하는 일은 행정부 내부 감사가 훨씬 더 유용하고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탕주의’보다 심층감사를▼

그러나 지금까지의 국감은 주로 국고 지출상의 회계 부정이나 직무감찰 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일과성 폭로 경쟁이나 한탕주의로 흐르는 경향을 보였고, 센세이셔널리즘에 영합하는 정치 감사에 치중해 왔다. 감사 결과를 입법 과정에 반영해서 정책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평소 거대한 행정부에 압도되어 온 ‘기관 자존심’을 보상받으려는 듯한 행태를 보였다. 집단 푸닥거리라고 불릴 만했던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행정 관료로 하여금 ‘한때만 넘기고 보자’는 식의 무사안일주의에 빠지도록 부추기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바로 이런 소모성 감사에서 벗어나는 일이 국감의 질적 도약을 위한 첫 단추임은 물론이다.

17대 국회 들어 첫 국감이기에 의원들이 자칫 과잉 의욕을 낼 수도 있다. 이번 국감의 감사 대상기관을 역대 최대 규모로 잡았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이런 과잉 의욕은 실패를 부르기 십상이다. 제한된 인력과 감사 기간을 감안하면 주마간산식 감사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감이 행정부의 기획기능을 따져보자는 것일진대, 중앙정부의 기획담당부서 중심으로 감사의 대상범위를 대폭 축소해 보다 심층적인 감사에 나서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이 경우 현장 감사를 고집해야 할 이유도 없다. 국회에서 차분하게 감사를 진행하면 우선 비용지출이 줄게 될 것이고, 현장 감사에 따르는 관폐나 부패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으며,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와의 감사갈등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지자체의 국가 위임사무는 모두가 집행기능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국감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감사 대상 우선순위를 그때그때 사회 수요에 따라 조정하고 제한하는 기획감사 전략을 도입할 필요도 있다. 지나치게 방만한 감사활동은 오히려 감사의 효율성을 해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감사 대상 영역을 처음부터 축소하는 경우에는 행정부의 나태와 태만을 유도하는 결과가 될 위험성도 있으므로 일단 제도상으로는 감사의 대상범위를 포괄적으로 설정해 두되 시의와 상황에 따라 감사 대상 범위를 임의 조정하는 탄력감사제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기관’서 ‘정책’중심으로▼

그러나 더욱더 중요한 것은 국감의 기본단위가 기관 중심에서 정책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는 소관 부처 중심으로 감사활동이 이뤄지고 있어 처음부터 행정부가 고안한 정책사업의 입법 의도에 대한 적실성 정도를 평가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이를 정책 중심으로 전환해 특정 정책과 관련된 행정부처를 통합적으로 감사하는 종합감사체제로 나가야 한다. 행정부처간의 경계를 초월하는 집단감사나 국회 상임위원회 간의 장벽을 뛰어넘는 협동감사, 나아가서는 정파간의 이해관계를 극복하는 초당적 합동 감사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국감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일은 행정부의 기획 기능을 중심으로 감사의 대상 범위를 축소하는 한편 감사기획 개념을 도입해 전략감사 시대를 열지 않고서는 성취가 곤란한 과제다. 국감에 대한 국회의 자기 진단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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