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허영/사이비 시민단체 간판 내려라

  • 입력 2004년 9월 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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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개 시민단체가 400억원이 넘는 정부의 국고지원을 받아 왔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권 편에 서 온 시민단체일수록 많은 액수의 돈을 받았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한심한 일이다. 이처럼 세금을 축내는 일부 사이비 시민단체가 우리의 정치풍토를 더욱 짜증나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과거 암울했던 시대에 시민단체는 많은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활력소였다. 권력의 철저한 감시자로서 반민주적 반인권적인 권력의 횡포를 비판하고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또 경제정의의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과 환경 공해의 추방을 위한 큰 업적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그래서 시민단체의 존재와 활동은 우리 민주 발전의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정부 지원받고 정책홍보에 앞장▼

그런데 참여정치를 강조하는 노무현 정부 탄생 이후 시민단체의 순수한 모습과 신뢰는 사라졌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시민단체가 기껏 정부 돈으로 정부정책의 산출(output)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에 비우호적인 메이저 신문에 대한 공격 선봉대로, 다루기 힘든 야당 정치인에 대한 낙선운동의 선동가로, 건전한 보수세력을 반통일분자로 매도하고 민족공조만이 정의라고 부르짖는 그릇된 친북 진보의 기수로, 반미(反美)만이 살길인 양 반미정서를 확산시키는 전위대로 그동안 맹렬히 활약해 온 단체일수록 더 많은 정부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정체가 드러난 이들 사이비 시민단체는 이제 시민단체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 정부의 돈을 받으면서 위장된 시민단체의 간판을 달고 국민을 속여 온 부끄러운 행적을 국민 앞에 속죄하고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건전하고 순수한 시민단체는 필요하고 유익하다. 특히 원내의 정부 통제세력이 제구실을 못하는 상황에서는 원외의 권력 통제세력으로서의 시민단체는 민주정치의 불가결한 요소다. 또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인 관심사를 제대로 정책에 담아 내지 못할 때 시민단체는 국민의 관심사를 국가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투입(input)의 통로로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단체는 본질상 정부 또는 정당과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존립의 필수적 전제다.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거나 정당의 후원을 받는 시민단체는 이미 순수한 시민단체로 인정하기 어렵다.

시민단체가 투입의 창구가 아닌 산출의 통로 역할을 하면 그것은 어용단체 내지 관변단체에 불과하다. 어용단체 내지 관변단체를 길러 우군으로 활용하려는 정부도 대의민주적인 통치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 정부는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의 징표가 코드정치와 포퓰리즘, 그리고 분파주의라면 위장된 사이비 시민단체가 그러한 징표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사이비 시민단체일수록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분파적 슬로건과 인기영합적인 구호 개발에 능숙한 솜씨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또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국회의 이라크 파병 결정 등을 실체도 없는 ‘시민’의 이름으로 뒤집으려는 무책임한 정치 행태로 반(反) 대의적인 포퓰리즘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순수한 시민단체까지 매도당해▼

민주정치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투입 통로인 시민단체의 활동무대도 이제 근본적으로 정화돼야 한다. 진정한 시민단체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사이비 관변 시민단체는 시민단체의 가면을 벗어야 한다. 출세지향적 시민운동가도 위선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 정부 편향적 산출 통로로 계속 활동하면서 권력에 진입하기를 원한다면 정부기구나 여당의 외곽 정치단체로 간판을 고쳐 달아야 한다. 그들로 인해 진정한 시민단체까지 국민에게서 외면당하는 현상은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의 투입 기능이 미약한 우리 대의정치 현실에서 투입 통로가 더욱 좁아져 주권자의 뜻이 반영될 길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민이 옥석을 가려 진정한 시민단체를 재정적 정신적으로 지원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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