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재성/‘재산 해외도피’ 그 이유는…

  • 입력 2004년 8월 25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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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서울세관에 적발된 H씨. 그는 중국에 내연의 처를 두고 4억8000만원을 ‘환(換)치기’ 수법으로 중국에 보냈다. 또 여자의 이름으로 집을 사고 회사를 설립하는 등의 방법도 써 총 13억원 상당의 자금을 빼돌렸다.

올해 2월 서울세관에 적발된 L씨도 환치기를 이용해 9억원가량을 호주로 빼돌렸다. 그는 호주에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자금으로 사용해 왔다.

올해 들어서 은행을 통하지 않고 불법적인 외환거래를 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재산의 해외 도피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는 환치기는 7월 말 현재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배 이상 폭증했다. 불법 자금 세탁 혐의가 있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된 거래건수도 급증하고 있다.

정부도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검찰 관세청 경찰청 금융감독원 등을 총동원해 ‘문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가 감시를 강화한다고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을까. 금융전문가들은 “글로벌시대를 맞아 마음만 먹는다면 합법적, 비합법적으로 돈을 빼 나갈 방법은 무수하게 많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돈의 탈출’이 왜 유난히 두드러지는지 그 원인을 있는 그대로 찾아서 근본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스타급 펀드매니저인 J씨는 이렇게 말한다. “최근 고액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짤 때 주식 채권 부동산 등과 같은 상품이 아니라 미국 일본 호주 등 나라별로 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쉽게 말해 부자들이 한국시장을 외면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배경에는 정권의 정책 방향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가진 자’에 대한 증오와 적의는 인간사회에서 자주 발견된다. ‘문제가 있는 부자’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한 사회에 부자들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질수록 돈은 빠져 나가고 경제는 위축된다. 그리고 그에 따른 가장 큰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간다. 자금의 해외 유출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집권세력이 시장경제와 재산권을 존중한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주는 것이다.

황재성 경제부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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