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도핑의 유혹

  • 입력 2004년 8월 16일 19시 01분


‘진실을 말해 다오, 그리스의 피가 얼었다, 성화는 꺼지는가….’ 그리스의 육상스타 콘스탄티노스 켄테리스와 관련된 그리스 신문 제목들이다. 4년 전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안겨준 올림픽 영웅, 고향 레스보스의 섬마을에 켄테리스 거리란 이름을 선사했던 이 나라의 가장 인기 있는 남자가 순식간에 ‘공공(公共)의 적’ 1호가 됐다. 올림픽 성화에 불을 붙이리라고 기대됐던 그였다. 그런데 도핑검사장에 나타나는 대신 개막식 직전 여자친구이자 훈련 파트너인 에카테리나 타노우와 함께 의문의 오토바이 사고를 입은 것이다. 도핑테스트를 피해 자해사고를 일으킨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으면서 ‘가장 깨끗한 올림픽’을 추구해 온 개최국 그리스의 체면까지 손상됐다.

▷도핑은 선수가 경기 능력을 높이기 위해 흥분제 호르몬제 등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약물을 사용하고도 세계 반(反)도핑기구(WADA)가 2400회나 실시하는 검사를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왜 선수들은 도핑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까.

▷해답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의 올림픽 모토에 있다. 이 자체가 인간한계에 대한 도전이다. 도핑은 육상과 수영에 집중된다. 축구 농구 등 기술과 팀워크가 중시되는 경기에 비해 육체적 능력에 더 의존하기 때문이다. 2등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치열한 경쟁에도 원인이 있다. 미국 시카고의 의사 밥 골드먼이 미국 육상선수 198명에게 “도핑을 해서 5년간 우승하고 WADA에 걸리지 않는 대신 약물 후유증으로 죽는다면 어쩌겠느냐”고 물었더니 절반 이상이 그래도 도핑하겠다고 답했다는 조사가 있다.

▷도핑이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더 나은 경기를 추구하는 것 역시 스포츠정신이다. 약물의 해악도 실은 담배나 알코올 정도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비아그라 먹는다고 사랑이 훼손되는 게 아니듯, 최상의 상태로 경기하고 관전의 기쁨을 주는 일을 무조건 금지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룰은 룰이다. ‘도핑 올림픽’이 따로 생겨나지 않는 한, 약물 없이 경기하는 올림픽 정신은 준수돼야 옳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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