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혁/ ‘수도이전’ 당론없는 한나라

  • 입력 2004년 7월 7일 2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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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충분한 검토 없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책임이 더 크다.”

박근혜(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특별법을 통과시킨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수도 이전을 ‘국민적 합의 없는 밀어붙이기’라고 비판하고 있는 한나라당 역시 특별법을 통과시킨 ‘공범(共犯)’이 아니냐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사과였다.

박 전 대표의 사과 이후 한나라당은 금방이라도 어정쩡한 입장을 버리고 수도 이전에 대한 확실한 ‘반대 당론(黨論)’을 정할 듯했다. 이날 의총에선 무려 7시간여 동안 난상토론을 벌였고, 이틀 뒤인 23일 다시 의총을 열어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당 지도부는 큰소리쳤다.

그러나 16일이 지난 7일까지도 한나라당은 수도 이전과 관련한 당론을 정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당 지도부는 정부의 수도 이전 추진에 대해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비판의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는 6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정부가 기어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려 한다”며 수도 이전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일에는 언론의 수도 이전 반대 여론 상승보도에 고무돼 “국민이 노 대통령과 여당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수도 이전 추진의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정작 수도 이전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에 대해서는 늘 그랬듯이 입을 다물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최근 사석에서 “지금 당론을 정할 수 있겠느냐.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수도 이전은 정말 어려운 문제”라며 “차라리 어정쩡한 입장으로 비난을 받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선일씨 피살사건, 정동채(鄭東采) 문화관광부 장관의 청탁의혹 사건, 열린우리당 장복심(張福心) 의원의 금품로비의혹 사건, 국회 원구성 합의에 따른 상임위 활동 시작 등 잇따른 현안에 수도 이전 문제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이다.

그렇지만 국가 중대사인 수도 이전 문제를 두고 무당론을 당론으로 삼는 듯한 한나라당의 태도는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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