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김형주/‘선물의 공포’ 정치인만 모르나

  • 입력 2004년 3월 10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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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발전 대원칙 중 하나가 바로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다.”

프랑스 인류학자 모스의 말이다. 뭔가를 주고받는 가운데 어떤 관계가 형성되고 이러한 관계들이 모여 친구, 지역공동체, 사회, 국가로 확대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선물의 대원칙’은 3가지의 의무로 이뤄진다. 선물을 줘야 하는 의무, 특정한 이유가 없으면 이를 받아야 하는 의무, 받았으면 보답해야 하는 의무가 바로 그것이다. 만약 이들 의무 중 어느 하나가 결핍되면 결코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맺어질 수 없다.

‘선물을 받는 의무’는 즐거운 것이다. 하지만 받은 선물 뒤에는 항상 ‘보답의 의무’가 있다는 사실은 쉽게 간과된다. 애초부터 반대급부를 전제로 주는 선물, 즉 뇌물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관행에는 ‘선물의 원칙’이 적용되는 듯하다. 기업은 정치인에게 돈을 줄 의무가 있고, 정치인은 이를 받고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회의원부터 대통령까지, ‘권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정치자금, 그것도 막대한 불법 자금을 끌어 모아야만 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풍토다.

자금수수 사실이 드러난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선의의 선물도 받는 순간 ‘보답의 의무’가 생긴다고 하는데, 하물며 거액의 정치자금을 어떻게 아무 부담 없이 받는다는 말인가. 받을 당시 청탁이 없었더라도 언젠가는 제공자에게 호의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것은 엄청난 특혜일 것이니, 정치자금은 결국 뇌물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선량들로 하여금 정치자금의 무서움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 강한 처벌만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본다. 꼬리 잡혀 구속되는 동료 정치인들을 보며 ‘선물의 공포’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야 한다.

김형주 대학원생·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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