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타인의 고통'…전쟁마저 상품이 되는 세상

  • 입력 2004년 1월 16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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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옮김/253쪽 1만5000원 이후고통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위성방송을 통해 매일 지구 저편에서 벌어지는 대량학살이나 전쟁의 끔찍한 희생자가 된 사람들을 보는 일이 일상화되어 사람들은 폭력에 익숙해지는 것일까.

미국의 진보적 비평가인 저자는 19세기 크림전쟁의 모습을 찍었던 로저 펜턴부터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의 전설적인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 죽은 병사의 피에 젖은 군복을 찍어 도발적인 인쇄광고로 만들었던 올리비에로 토스카니 등의 사진을 예로 보여주며 타인의 고통을 하나의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리고 마는 현대의 일상을 드러낸다. 저자는 1977년 ‘사진에 관하여’라는 책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전작을 잇는 이미지 비평서라기보다는 미국의 대이라크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아온 저자의 ‘전쟁을 중단하자’는 현실참여 발언에 가깝다.

저자는 고통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것이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이유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냉소에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폭력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그를 통해 전쟁의 본성을 깨닫고 양심의 명령을 수행할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촉구한다.

‘중요한 것은 스펙터클이 아니라 실제의 세계를 지켜 나가는 것이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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