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청와대가 하면 ‘무죄’?

  • 입력 2004년 1월 7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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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 부처에서 그랬다면 ‘괘씸죄’에 걸려 크게 당했을 겁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 간부는 청와대가 지난해 12월 29일 중앙인사위원회에 심사서류도 제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행정관 16명의 승진발령을 낸 데 대해 ‘청와대니까 가능한 일’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 한 경제부처는 1급 고위직 내정자의 심사서류를 냈다가 중앙인사위에서 ‘부적격자’로 판정이 나 인사가 취소되기도 했다.

중앙인사위가 승진 대상자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청와대처럼 내부통신망에 사실상 공개 발령을 내는 ‘간 큰’ 부처가 있다는 말을 기자는 들어본 일이 없다.

이런 점에서 중앙인사위의 심사 절차를 무시한 청와대의 인사 난맥상을 지적한 본보 보도(7일자 A1·4면)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한마디로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은 7일 브리핑에서 “상당 부분 왜곡된 보도라고 생각한다”면서 “바로 소송을 제기할 것을 검토하는 등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는 취재원 보호 때문에 구체적인 취재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보도 내용 중 단 한 대목도 관계 당국자의 확인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정말 안타까운 점은 시스템과 절차를 존중하겠다는 ‘참여정부’의 슬로건과 달리 파행 인사를 해 놓고도 청와대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혹시라도 대변인의 이런 ‘으름장’이 다른 신문들의 후속 보도를 막아 보자는 ‘꾀’는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백보 양보해 청와대의 해명대로 ‘내정’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것뿐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비서실장 명의로 ‘3급에 임(任)함’이라는 승진 통보문을 전자통신망에 띄워 기정사실화한 뒤 중앙인사위가 뒤늦게 심사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일 아닌가.

청와대측의 ‘강변’에 가까운 반박을 보면서 청와대가 아무리 ‘바담 풍’이라 하면서 각 부처에 ‘바람 풍’할 것을 강요해 봐야 복지부동(伏地不動)만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최영해 정치부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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