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배금자/'배짱 채무자' 줄이는 길은

  • 입력 2003년 12월 11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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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강조한 나머지 채무자의 재산정보를 두텁게 보호하고, 채무자의 재산정보에 대한 채권자의 정당한 알 권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미흡하다.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려 놓고 큰소리를 치고 채권자는 판결을 받아도 판결문이 무용지물이 된 경우도 많다.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사람, 다른 사람의 사기나 불법행위로 피해를 본 사람, 배우자의 유책 사유를 이유로 이혼 및 재산분할소송을 하려는 측이 채권자이고 그 상대방이 채무자다. 채권자가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먼저 채무자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 가처분 등 보전조치를 해 두는 것이 판결의 실효성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조치다. 소송이 제기되면 채무자는 재산을 처분하고 은닉해 버리기 때문이다.

▼ 소송前 재산 처분-은닉 사례 빈번 ▼

소 제기 전에 채무자의 재산에 대한 보전조치를 해 놓는 것이 중요한데도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 제도는 그 보전조치를 위해 필수적인 채무자의 재산정보를 파악하는 합법적인 길을 막아놓고 있다. 채무자의 재산은 부동산과 예금 등 금융재산, 주권 등 채권재산, 회원권, 타인에 대한 채권 등 기타 재산과 같이 여러 종류로 나뉘어 있다. 가압류 등을 하기 위해서 부동산은 정확한 번지를, 예금 등 금융재산은 거래은행과 지점까지, 주권 등 채권재산은 예탁한 증권회사를, 각종 회원권이나 타인에 대한 채권의 경우에는 제3채무자의 이름과 주소까지 알아야만 한다.

부동산의 경우 번지를 모르면 채권자는 부동산정보를 보유한 국세청이나 구청 등이 보유한 채무자의 부동산 정보를 제공받을 길이 없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 채무자의 금융계좌, 증권계좌 등에 대해서는 부부 사이조차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채권자가 신용정보회사에 의뢰해 채무자의 재산정보를 파악하는 길이 있지만 정보회사가 일반 채권자에게 제공해 주는 정보는 채무자 소유의 부동산과 자동차 등 일부에 그친다. 공유 부동산 등에 대해서는 누락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재산, 증권 등의 정보는 아예 제공되지 않는다.

재산보전조치 단계에서는 법원도 채무자의 재산조회를 해 주지 않는다. 우리의 법제도는 채권자가 스스로 ‘알아서’ ‘재주껏’ 채무자의 재산정보를 파악해 보전신청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채무자의 재산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채권자는 불법, 편법, 연줄 등 각종 수단을 통해 알아내면 보전신청을 할 수 있고, 정보를 알아내지 못하면 보전신청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채무자의 재산정보 파악 방법과 보전조치 방법을 불법과 편법, 연줄에 의존하도록 방치하는 사법 현실은 어처구니가 없다.

미국에서는 ‘Discovery’로 불리는 재판 전 증거개시제도가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하는 데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채무자는 자신의 재산목록을 빠짐없이 채권자측에 제공해야 하며 만약 이를 은닉하거나 숨긴 경우는 법원모욕죄로 처벌을 받게 되고, 법원은 속인 채무자에게 가혹하리만큼 응징을 한다. 미국은 사설탐정제도가 합법화되어 있어 채무자의 재산상태와 사생활까지 합법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 우리는 사설탐정제도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 ‘채권자 정당한 알권리’ 보장돼야 ▼

우리는 소송이 제기된 뒤에도 법원을 통해 채무자의 재산조회를 하는 길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채무자에게 일괄 재산목록을 제출케 하는 제도도 없다. 법원은 채권자가 일일이 채무자의 거래 금융기관 해당 지점까지 알아서 특정해 신청하는 경우에만 재산조회를 해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채무자의 재산정보를 구체적으로 모르는 채권자는 재산조회 신청조차 하지 못한다. 우리의 경우 채무자에게 재산목록을 제출하도록 명령하는 단계는 판결이 확정된 후이다. 이미 재산을 처분하고 은닉한 뒤다. 그때는 이미 늦다. 우리 제도는 악덕 채무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불법과 편법, 연고주의가 넘치는 이 사회에서 법원의 재산보전조치 방법마저 이런 식으로 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채무자의 사생활 보호 못지않게 채권자 보호도 중요하다. 채무자의 재산정보에 대한 채권자의 정당한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배금자 객원논설위원·변호사 bae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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