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만 하더라도 이혼부부의 자식은 친가(親家)에서 맡는 것이 상식이었다. 자식이 별개의 인격체라기보다는 대(代)를 잇는 핏줄이라는 가부장적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일곱 살 난 아들을 혼자 키우는 이혼 아빠의 고단한 삶을 그려 미국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영화 ‘크레이머 대(對) 크레이머’(1979)가 한국에서 흥행이 부진했던 것은 그 같은 현실이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은 탓이었다. 이혼율이 눈에 띄게 늘어난 1990년대 들어 여성들이 자식의 양육권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버티는 대신 남성들은 외레 홀가분한 재혼을 위해 여성에게 양육권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이혼부부가 서로 자식의 양육권을 떠넘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가정법원 주변에는 부부가 서로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며 제 갈 길로 가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미아가 된 아이들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20대 초반의 부부가 서로 애를 맡지 않겠다며 버티는 바람에 판사가 호되게 호통을 친 일도 있었다. 판사가 결국 “엄마가 애를 키우고 아빠는 양육비로 수입의 절반을 보내라”는 화해권고안을 작성했으나 이마저 거절당하자 결국 아이의 외할아버지가 양육을 맡겠다고 나서 사안이 종결됐다.
▷미국에서는 협의이혼의 경우 거의 100% 엄마가 아이의 양육권을 갖는다. 소송의 경우에는 아빠와 엄마가 자녀를 데려가는 비율이 50 대 50 정도. 어느 경우든 같이 살지 못하는 부모를 의무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부부는 갈라서면 남이지만 부모 자식은 결코 남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혼부부라도 자녀에 대한 도리와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잘못했다간 한국의 어느 몰락한 재벌처럼 이혼한 아내가 몇 년 뒤 남편의 애정행각을 속속들이 까발리는 책을 펴내 복수할 수도 있다. 결혼하는 남녀의 맹세 못지않게 이혼하는 남녀의 의무 또한 중요한 시대가 됐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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