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양육권

  • 입력 2003년 11월 20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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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절정의 순간에 재벌가 외동아들과 결혼했던 톱 탤런트 고현정씨가 전격 이혼했다. ‘재벌가의 맏며느리’에서 다시 ‘만인의 연인’으로 돌아온 셈이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는 그들 부부의 ‘동화(童話)’ 같았던 로맨스는 결국 각종 억측과 구설 속에 8년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모든 것은 끝이 있다’는 ‘모래시계’의 결론과도 유사하다. 위자료는 15억원으로 알려져 있으나 고씨의 '유명세' 탓인지 이를 두고도 설왕설래가 무성하다. 1남(5) 1녀(3)의 양육권은 남편이 갖게 됐다고 한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이혼부부의 자식은 친가(親家)에서 맡는 것이 상식이었다. 자식이 별개의 인격체라기보다는 대(代)를 잇는 핏줄이라는 가부장적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일곱 살 난 아들을 혼자 키우는 이혼 아빠의 고단한 삶을 그려 미국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영화 ‘크레이머 대(對) 크레이머’(1979)가 한국에서 흥행이 부진했던 것은 그 같은 현실이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은 탓이었다. 이혼율이 눈에 띄게 늘어난 1990년대 들어 여성들이 자식의 양육권만은 포기할 수 없다고 버티는 대신 남성들은 외레 홀가분한 재혼을 위해 여성에게 양육권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이혼부부가 서로 자식의 양육권을 떠넘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가정법원 주변에는 부부가 서로 아이를 키우지 않겠다며 제 갈 길로 가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미아가 된 아이들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20대 초반의 부부가 서로 애를 맡지 않겠다며 버티는 바람에 판사가 호되게 호통을 친 일도 있었다. 판사가 결국 “엄마가 애를 키우고 아빠는 양육비로 수입의 절반을 보내라”는 화해권고안을 작성했으나 이마저 거절당하자 결국 아이의 외할아버지가 양육을 맡겠다고 나서 사안이 종결됐다.

▷미국에서는 협의이혼의 경우 거의 100% 엄마가 아이의 양육권을 갖는다. 소송의 경우에는 아빠와 엄마가 자녀를 데려가는 비율이 50 대 50 정도. 어느 경우든 같이 살지 못하는 부모를 의무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부부는 갈라서면 남이지만 부모 자식은 결코 남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혼부부라도 자녀에 대한 도리와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잘못했다간 한국의 어느 몰락한 재벌처럼 이혼한 아내가 몇 년 뒤 남편의 애정행각을 속속들이 까발리는 책을 펴내 복수할 수도 있다. 결혼하는 남녀의 맹세 못지않게 이혼하는 남녀의 의무 또한 중요한 시대가 됐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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