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영/정치개혁 '절호의 찬스'

  • 입력 2003년 10월 28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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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가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정국주도권을 장악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정파들의 계산된 행동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SK비자금으로 촉발된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수사가 뇌관 역할을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씨가 SK비자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만 해도 한나라당은 검찰을 치켜세우고 대통령을 공격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 충격으로 인해 노 대통령은 자신의 거취를 국민에게 직접 묻겠다는 제안을 하기까지 했다. 국정혼란을 우려하는 국민을 볼모로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야당의 공격을 잠재우려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특검놓고 손익계산만 바빠 ▼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재신임 카드로 역공을 당한 데다 SK비자금 100억원 불법 수수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완전히 코너에 몰렸다. 최병렬 대표는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국민에게 사죄하며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국면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들고 나온 카드가 바로 ‘전면 특별검사제’다. 각 당의 지난해 대선자금과 대통령 측근의 비리사건에 대해 전면적으로 특검을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한나라당의 논리는 간단하다. 첫째, 한나라당의 100억원 수수 사실이 부각되면서 대통령을 둘러싼 비리사건들이 묻히는 결과가 초래됐다는 것이다. 사실 대통령 재신임 문제까지 초래한 대통령 주변의 비리와 국정수행 미숙에 대한 비판은 최근 들어 잠잠해졌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검찰이 대통령과 관련된 비리사건을 철저히 조사하지 않고 흐지부지 끝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SK비자금 사건이 대선자금 문제로 전환되면서 한나라당의 대선자금만 조사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판단이다. 대선자금 문제에 관한 한 여야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지금은 한나라당 대선자금만 조사의 타깃이 되고 있다. SK비자금 문제가 대선자금 수사로 전환된 이상 여야 모두가 조사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인 것이다.

대선자금 수사가 정쟁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된 이유는 이것이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의 검찰수사를 지켜본 뒤 미진할 경우 특검을 도입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검찰수사 결과가 일단 나오면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에서 혼자 곤경에 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열린우리당 입장에서는 지금이 호기인데 특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마저 조사하기 시작하면 개혁 이미지에 손상을 입게 될 것이고, 신당에 대한 낮은 지지도를 만회할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으로서는 특검 도입이 2000년 총선을 포함한 김대중 정부 시절의 정치자금 조사로 확대될 것을 우려한다. 따라서 자신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대선자금 공방에 초점을 맞추면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모두 공격할 수 있는 지금 상황이 좋은 것이다.

대선자금을 둘러싼 정파들의 이 같은 입장차와 정치권의 공방은 검찰조사 결과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

지난 몇 개월 동안 검찰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국민의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 검찰이 계속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려면 여야 모두의 대선자금에 대해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를 해야 한다. 검찰은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측이 이중장부를 만들었다는 민주당의 의혹제기와 관련해, 민주당측에 자료 제출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하는 등 일정 부분 대선자금 수사의 형평성을 의식 하는 듯하다. 그러나 ‘불법’에 한해 수사를 하게 마련인 검찰의 특성상 수사를 한다 해도 대선자금 전모를 밝히는 수준까지 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노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계속 지난해 대선자금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대선자금을 확실하게 밝힐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위기를 정치발전의 기회로 만드는 길이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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