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러면서 자주국방 되겠나

  • 입력 2003년 8월 18일 18시 30분


해마다 수조원의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군(軍) 전력증강 예산이 낭비된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이 지난해 국방부 감사를 통해 밝혀낸 내용을 보면 그동안 군 당국이 내세웠던 내부개혁 다짐은 말뿐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국방부는 K-9 신형 자주포 등 10여건의 군 장비와 부품도입 계약을 체결하면서 원가계산을 잘못해 21억원 이상을 낭비했다. 차기 잠수함(KSS-II) 사업은 계약업체 선정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유리한 평가방법을 적용해 외화 낭비가 예상된다는 지적을 받았고 지난해 5월 최종 결정된 5조8000억원 규모의 차기 전투기(FX) 사업도 평가 과정이 부적절했던 것으로 지적됐다. 감사원 자료는 지금까지의 국방예산 집행도 허술했지만 앞으로도 낭비될 ‘구멍’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하다는 국방예산이 이처럼 안에서부터 새나가서야 국방부의 예산증액 요구가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다. 이런 식이라면 광복절 경축사에서 “10년 안에 자주국방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약속도 공염불이 되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 국방부는 내년도 국방예산으로 올해보다 28.3%나 많은 22조3495억원(GDP 대비 3.2%)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원안대로 통과된다고 해도 자주국방을 이루려면 10년 이상 긴 세월이 걸린다. 이런 마당에 주먹구구식 집행으로 예산이 허투루 쓰인다면 자주국방은 영영 이루지 못할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국방부는 뼈를 깎는 자체 개혁이 선행될 때 예산 증액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력증강사업 추진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 국민의 세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군 구조개편을 통해 과도한 경상운영비를 줄이고 전력투자비 비중을 늘리는 일도 더는 머뭇거리지 말고 추진해야 한다. 자주국방이 헛된 구호로 그치지 않게 할 일차적 책임은 국방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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