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법인, 개발지역 땅 매입 여러 필지로 쪼개 4배에 팔아

  • 입력 2003년 8월 11일 17시 45분


국세청이 11일 발표한 세무조사 결과를 보면 부동산 투기 수법이 과거에 비해 훨씬 지능적이고 조직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공의 인물을 내세운 이중 계약으로 거래가격 상승 분위기를 유도하거나 기업형 부동산 매매 법인이 개발지역 땅을 사서 분할 판매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빼돌리는 등 신종 수법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기업화된 투기세력=서울 강남구에 있는 A부동산 매매법인은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충남 서산시와 경기 용인시 등 개발이 예상되는 임야 13필지 5만여평을 64억여원에 매입한 뒤 100∼500평 단위로 필지를 분할했다.

이어 텔레마케터 90명을 고용해 서울 등 수도권 거주자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거는 텔레마케팅으로 고객을 유인한 뒤 204명에게 2∼4배 이상 비싼 값에 되팔았다.

A사는 세금을 빼돌릴 목적으로 이중 계약서를 작성하고 매출을 줄여 법인세 9억4200만원 등 총 20억4400만원을 탈루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자금도 부동산 시장으로=회사 돈을 빼돌려 부동산 투기를 한 건설업체 대표도 적발됐다.

서울에서 건설업체를 경영하는 박모씨(47)는 일용 노무비 등 가공원가를 부풀리는 방법 등으로 빼돌린 기업 자금 8억3200만원을 충남 태안군에 있는 임야를 사는 데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법인 소득 4억3000만원과 아들에 대한 증여액 1억2400만원을 신고하지 않아 3억1300만원을 추징당했다.

▽프리미엄이 적은 아파트도 투기 대상=상습 부동산 투기혐의자인 박모씨는 2001년 12월 서울 성북구에 있는 모 재개발아파트의 분양권 21가구분을 다른 사람 명의로 사들였다. 2개월 뒤 21가구를 되팔아 6400만원의 양도차익을 올렸다.

그러나 양도세 신고를 할 때는 차익이 전혀 없는 것으로 신고했다가 3000만원을 추징당했다. 가구당 프리미엄이 500만∼1000만원선이어서 양도차익에 대한 조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신고를 했다가 적발된 것.

프리미엄이 낮게 형성된 곳에도 자금력이 좋은 부동산 투기세력들이 들어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유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판명된 셈이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전문가들 반응▽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세무조사 방침이 발표되자 부동산 전문가들은 단속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세무조사가 단기적인 안정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강남 집값 안정을 세금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

또 최근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은 안전진단을 통과한 강남 일부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고 거래 없는 호가(呼價) 상승인데도 정부가 ‘국지적 현상’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격 상승은 국지적 현상=

서울에서 집값이 크게 오른 곳은 강남권에서 7월 이전에 사업시행 인가나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들이다. 7월부터 시행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강화된 재건축 규제를 받지 않는 곳이다.

부동산시세정보 제공업체 부동산114 김희선 상무는 “재건축 사업이 빨리 진척되고 있는 이들 단지는 다른 재건축 단지에 비해 사업성이 높아 가격 상승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면서 “이마저 호가만 올랐을 뿐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는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 상승이 기존 아파트로 번져 갈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기존 아파트 가격은 거의 오름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분양권 전매금지 여파와 주택 공급량이 충분해 당분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조짐은 없다”고 덧붙였다.

▽지나친 규제, 원활한 수급관계를 해칠 수도=

정부 규제가 원활한 수급관계를 해쳐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닥터아파트 곽창석 이사는 “양도세를 계속 건드리면 일시적으로 주춤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세금 부담을 두려워한 공급물량이 자취를 감춤으로써 공급 부족으로 오름세가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투기지역에서 오히려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것은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심리보다 늘어난 양도세 부담을 집값에 전가시킨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김 사장은 또 “정부의 세금정책이 단기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면서 “강남을 대체하는 주거지를 시급히 개발해 공급량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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