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선기자의 여행스케치]남이섬 탐험

입력 2003-06-18 10:50수정 2009-10-1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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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이 달라지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휑하니 넓은 잔디밭과 방갈로 몇채만 달랑 들어앉아 있어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마땅치 않아 학생들의 단체 MT 장소로만 활용되던 남이섬이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는 ‘임자’를 만나 독특한 생태문화 체험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남이섬을 돌아보았다.

섬전체가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독특한 유원지, 남이섬.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어 70~80년대는 대학생들의 MT 장소 0순위로 꼽히는 곳이었다. 기자 또한 대학교 1학년 때 여지없이 남이섬으로 MT를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당시 그곳에서 무엇을 했던가? ‘발야구’ 좀 하다 줄지어 허슬춤 배우고(당시엔 허슬춤이 정말 대유행이었다)… 그러다 해가 지면 신입생 환영회니 어쩌니 해서 하나같이 ‘알코올’을 왕창 들이키고 다음날 쓰린 속과 지끈거리는 머리로 남이섬을 빠져나온 것이 전부다.

 

사실 그당시 남이섬은 그저 넓은 잔디밭과 방갈로 몇채만 달랑 있어 딱히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때문에 그 섬에 들어간 대개의 사람들은 우리처럼 지내다 나오는 게 ‘기본 코스’였다.

그러나 요즘의 남이섬은 그 얼굴이 확 달라졌다. 남이섬을 동화의 나라, 환상의 섬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남이섬 지킴이’ 강우현 사장(51)의 남다른 고집 때문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의 대표주자였던 사람답게 특히 아이들의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생각으로 꽉 차 있는 강사장.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섬, 노래가 흐르는 섬, 예술인들의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가 꿈꾸는 남이섬이다.

그러나 강사장도 2년 전까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남이섬을 찾는 손님 중 하나였을 뿐. 그림동화 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그는 작품 구상을 위해 생각할 일이 있으면 간간이 남이섬을 들르곤 했다. 하지만 남이섬을 대할 때마다 늘 ‘김빠진 사이다’처럼 밍밍한 느낌뿐이었다. 그는 남이섬을 두고 ‘늙고 병든 촌부가 새벽녘에 부스스 일어나 막 세수하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먼 산을 쳐다보는 듯한 초점 없는 모습’이라며 혹평을 하기까지 했다.

괘종시계처럼 생기를 잃은 채 왔다갔다하는 뱃사공과 낡은 나루터,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힌 야생화들, 톱날에 가지가 잘려나간 나무들, 곳곳에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와 강물에 둥둥 떠다니는 빈 병들… 남이섬은 그렇게 중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남이섬이 내는 신음소리를 들었다. 나무며 풀이며 흙이며, 남이섬의 모든 식구들이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며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순간 불현듯 자신만이라도 나서서 그네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선 버려진 큼직한 나무토막들을 주워와 남이 장군의 모습을 새긴 장승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무려 1백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이섬 주인이 “차라리 당신이 이곳을 맡아 가꾸어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고 그는 졸지에 사장이 됐다.

당시 남이섬을 찾는 사람은 고작해야 하루 1백명 안팎. 심지어 어떤 겨울날엔 딱 두명만이 남이섬을 찾은 적도 있다. 당연히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사장으로서 그가 받았던 월급은 단돈 1백원. 강사장 스스로 제시한 금액이다. 대신 흑자로 전환되면 이익의 절반은 ‘내 마음대로’ 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만큼 남이섬에 생기를 불어넣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60대 노인에서 20대 젊은이로 회춘한 남이섬

강사장이 부임한 후 달라진 일번 타자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남이섬엔 없다. 바로 전봇대다. 그냥 눈으로 볼 때는 잘 모르지만 사진을 찍다보면 렌즈 안에 늘 전봇대와 전깃줄이 ‘찬조출연’하는 바람에 영 그림이 안 나오는 게 그가 제거대상 1호로 정한 이유. 지금 남이섬의 전깃줄은 모두 ‘시야 방해죄(?)’로 땅속에 갇히고 말았다.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좋은 넓은 잔디밭 풍경.  

반면 ‘철창’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와 자유를 찾은 것들도 있다. 자연의 섬을 만들기 위해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잔디밭에 풀어놓은 것. 아닌게아니라 남이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토끼, 사슴, 오리, 타조 등이 여기저기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섬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동물로 지목되어 해마다 ‘체포’당했던 청설모도 강사장으로부터 면죄부를 얻어 남이섬의 귀염둥이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동물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잡으려고 쫓아가고 이상한 먹이를 주는 식으로 심술궂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딜 가나 꼭 있게 마련. 때문에 강사장은 동물 가족을 사랑해달라며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은지 구체적으로 방법을 알려준다.

“타조를 만나시면 휘파람을 불어주세요. 요즘 새로 들어온 캐나다산 타조 녀석들을 길들이는 중인데요, 먹이를 주면서 휘파람을 불어주기 시작했거든요. 사슴은 사람을 보면 달아난답니다. 절대 따라가지 마세요. 사슴이 놀라거든요. 토끼는 가끔 사람을 따라오죠. 하지만 비닐이나 고기를 주지 마세요. 초식동물이거든요. 그리고 청설모요? 그 깡패 같은 녀석들, 하지만 귀여워요. 보기만 하시면 됩니다. 요샌 사람들을 놀리기도 해요. 오리와 거위요? 그 촌놈들은 한쪽에만 있어요. 문을 늘 열어두지만 도통 밖으로 나오려 하질 않네요. 그리고 가끔 반갑지 않은 녀석들, 쥐도 돌아다니지만 사람을 보면 피해가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강을 끼고 늘어서 있는 허름하고 작은 방갈로도 모습을 달리했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개방한 것. 단 섬을 찾는 이들에게 예술적 감흥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들고 와야 하며 갤러리를 꾸미는 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이미 자리를 잡은 도자기, 지공예 작품은 이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앞으로 퀼트, 조각 등 다양한 예술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원한다면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깨진 병조각을 도자기 가마에 구워 만든 ‘이상야릇한’ 색상의 유리접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품목.

올 10월엔 노래박물관이 문을 열게 된다. 대중음악에 관한 모든 자료를 이곳에서 볼 수 있을 뿐더러 스튜디오에서 직접 자신의 노래를 녹음해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한마디로 종합아트센터로서의 공간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이곳은 떨어진 낙엽, 꽃잎 하나라도 절대 쓸어버리는 법이 없다. 떨어지는 낙엽과 꽃잎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여름에는 섬 안에 비닐 텐트를 쳐놓고 ‘별볼일 캠프’를 열었는가 하면 겨울에는 섬 전체를 눈썰매장으로 만들어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보드가 아닌 어른들이 어린시절에 타던 진짜 썰매를 타게 하기도 했다. 이처럼 남이섬에 가면 간간이 다소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강사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남이섬표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80년대 중반 개봉한 강석우, 이미숙 주연의 이루지 못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영화 ‘겨울 나그네‘, 재작년 겨울 환상적인 눈풍경으로 유난히 눈길을 끌었던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 무대였기 때문일까? 남이섬은 그안에 있다보면 왠지 모를 애틋함이 묻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아름다운 겨울풍경을 그려내던 강변과 잣나무 숲길도 이제는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고 안면을 바꿨다.

파릇파릇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잔디, 온통 벚꽃으로 하얗게 뒤덮인 나무를 병풍삼아 도시락을 먹는 가족들, 어린 아이와 함께 2인용 자전거를 타는 젊은 부부, 손을 꼭 잡은 채 오솔길을 걷거나 강 위에서 보트를 즐기는 연인들…. 단체로 입장한 학생들 일색이었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가족끼리, 연인끼리 오붓하게 남이섬을 즐기는 이들이 더 많다.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알려진 후 남이섬 ‘겨울 마니아’ 늘어

특히 ‘겨울연가‘ 촬영 이후 연인들 중엔 겨울에 찾아오는 ‘겨울 마니아’들이 부쩍 늘었다지만 막상 와서 보니 이곳은 언제 어느 때 와도 손해 볼 일은 없을 듯싶다. 참고로 이곳 관계자에 의하면 남이섬은 1년 열두달, 24시간마다 얼굴이 틀리다나? 낙엽이 쌓이는 가을과 눈으로 덮인 겨울이 다르고 새벽 물안개 필 때, 한낮, 저녁에 지는 노을, 별밤, 달밤의 풍경이 다 다르다는 것. 특히 달이 유난히 밝은 날엔 아예 전등을 꺼버린 채 ‘오리지널 달밤’의 맛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시시각각 온몸으로 체험해야 제맛을 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잠을 자면 안된다고 할 정도다.

남이섬에는 연인끼리 가족끼리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이렇듯 천의 얼굴을 가진 남이섬에 이제 갓 태어난 또 하나의 얼굴이 생겼다. 공교롭게도 취재 당일인 4월12일 유료(어른 2천원, 어린이 1천5백원) 공개하기 시작한 ‘그때 그시절 전시관’이 바로 그것. 50년대부터 80년대 당시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관은 아이들에겐 엄마 아빠의 어린시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어른들에겐 추억이 깃든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주기에 충분하다.

낡은 책상과 의자에 앉아 풍금소리에 맞춰 노래를 하는 교실 풍경. 칠판엔 여지없이 떠든 아이와 변소 청소 당번 이름이 적혀 있고 큼직한 조개탄 난로 위에는 양철 도시락이 겹겹이 얹혀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 옛날 이발소 풍경도 새삼 이채롭다. 특히 팔걸이에 걸쳐놓은 빨래판에 앉아 머리를 깎는 어린아이 모습을 보니 기자도 어린시절 그렇게 앉아 머리를 깎던 생각이 나 슬그머니 웃음이 나기도 했다. 만화 가게와 전기밥통 대신 따뜻한 아랫목에 담요를 깔고 밥을 묻어놓은 모습 등 추억이 깃든 볼거리가 쏠쏠하다.

하루종일 구석구석 돌아보다 보니 남이섬 곳곳에서 뭔가 톡톡 튀는 생기가 묻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김 빠진 사이다의 밍밍한 모습은 별로 없다. 그런데도 강사장은 여전히 ‘남이섬을 찾는 이들을 무엇으로 놀라게 해줄까?’ 하는 생각으로 산다. 그가 이렇게 ‘남이섬 지킴이’로 살아가는 것은 미래의 아이들 때문이다.

강우현 사장은 ‘이 나라에서 판박이 교육으로 생산된 지식가방의 ‘범생이’들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대자연 속에서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그리고 진정한 창조의 샘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음을 바로 이 섬에서 알아챌 수 있기를 바란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구나’ 하며 자신의 바람을 표현했다.

남이섬에 들어가려면 예나 지금이나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입장료를 포함해 뱃삯은 어른 5천원, 어린이 2천5백원). 오고 가는 시간은 5분 남짓. 그러나 배를 타려면 20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강사장에게 남이섬 출입에 관련해 꼭 실현해보라고 부추기고 싶은 게 한가지 있다. 그 스스로도 남이섬 일기에 밝혔듯이 앞으로는 배가 아닌 외줄 리프트를 타고 짜릿한 스릴감을 맛보며 드나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바로 그것. 그게 언제쯤 실현될는지… 아무튼 부탁~해요.

남이섬 문의 031-582-5118

■ 글&사진·최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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