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투기 단속한다며 인권 침해하나

  • 입력 2003년 5월 30일 18시 32분


코멘트
국세청이 주상복합아파트와 주거용 오피스텔 청약자의 인적사항을 분양회사 및 은행에서 받아 정밀 분석하겠다는 발상은 행정편의주의의 극치를 보여 준다. 국세청 직원들이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모든 청약자를 범죄인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기관이 청약신청서에 적힌 개인정보를 무슨 권리로 요구한단 말인가. 명백한 인권침해이다.

부동산투기를 잡기 위해 3채 이상 청약한 투기혐의자나 ‘떴다방’을 적발해 98년 이후 세무 상황을 점검하겠다는 방침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목적이 옳은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서 국가기관이 법을 어겨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영장 없이 고객의 거래 내용을 가져가는 것은 금융실명제법을 어기는 일일 수도 있다. 더구나 계약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청약자의 인적사항을 분석하는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법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세청은 얼마 전에도 수도권과 충청권의 중개업소에 직원 3000명을 무기한 투입해 감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또한 부동산투기를 조장하는 일부 악덕업자를 잡기 위해 모든 중개업자를 범죄혐의자로 취급하는 발상이다. 국세청 직원들이 나와 입회조사를 하겠다고 하니 대부분의 중개업소가 문을 닫았고 결국 실수요자들까지 거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선량한 중개업소에 대한 사실상의 영업방해 행위이다.

세금으로 부동산투기를 잡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현재의 저금리 기조에서는 돈의 물꼬를 다른 데로 돌리는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아무리 세금으로 위협해도 부동산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거액의 양도소득세를 물더라도 은행 이자보다 수익이 높은 현실부터 고칠 일이다.

국세청은 세금징구권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가진 기관이다. 하지만 이 힘은 나라살림과 국민의 편의를 위해서만 행사돼야 한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직원들의 행정편의를 위해 마음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 이래서야 국민에게 가까이 가는 세무행정이 이루어질 수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