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9>노인 자원봉사

  • 입력 2003년 3월 13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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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서울대병원 1층 로비에서 조학구 목사가 환자에게 병원을 안내해주고 있다. 조 목사는 이 병원에서 14년째 안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권주훈기자
12일 오전 서울대병원 1층 로비에서 조학구 목사가 환자에게 병원을 안내해주고 있다. 조 목사는 이 병원에서 14년째 안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권주훈기자
《조학구(趙鶴九·68·경기 파주시 문산읍) 목사는 어머니가 지병으로 사망한 것을 계기로 89년부터 서울대병원 1층 로비에서 14년째 안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조 목사가 병원을 처음 찾는 환자의 손을 잡고 진찰실이나 검사실로 안내해주면 대부분의 환자는 감격해 한다. 하루에 30여건의 환자 민원을 직접 해결하고, 조금이라도 환자가 불편하게 느끼는 게 있으면 메모해뒀다가 나중에 병원장에게 건의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조목사는 자원봉사를 하기 전엔 무릎의 관절염으로 고생했고 얼굴이 검게 변할 정도로 간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간호사들로부터 ‘젊은 오빠’로 불릴 만큼 건강하다. 조 목사의 건강비결은 남을 도울 때 느끼는 보람과 규칙적인 생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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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파주에서 버스를 타고 오전 8시에 출근해 병원에서 거의 하루 종일 일한다”며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감기 한번 걸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는 건강의 보증수표=자원봉사는 무엇보다 노인을 건강하게 한다. 노년기에 흔히 생길 수 있는 무료함과 외로움을 해소시켜 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노인은 사망 전 평균 12년 동안 만성질환으로 고통을 받는다. 미국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 중 11.3%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자원봉사를 하지 않는 노인들의 경우 자원봉사를 하는 노인들에 비해 우울증에 걸린 비율이 4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전남 목포시에서 40년간 교직생활을 하다 99년 서울로 온 유승부(劉勝夫·64·노원구 상계동)씨는 최근 3년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바깥출입은 엄두도 못 내고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두 번에 걸친 교통사고로 뇌수술과 장 개복(開腹)수술을 받은 데다 2001년에는 폐진균증 때문에 오른쪽 폐수술까지 받았다.

그는 지난해 8월 우연히 서울시립 북부노인종합복지관에서 초등학교 예절교육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다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을까’하는 반신반의(半信半疑) 상태로 복지관에서 실시하는 예절지도강사 교육을 하루 8시간씩 8일 동안 열심히 받았다. 지금은 일주일에 4일, 하루에 1, 2시간 아이들에게 예절을 가르치고 있다.

유씨는 “집안에 있을 때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몸도 점차 허약해지는 걸 느꼈으나 지금은 매일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몸도 저절로 좋아지고 무엇보다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시급한 자원봉사 인프라=자원봉사활동이 노인들에게 주는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자원봉사를 하는 노인은 그리 많지 않다.

2002년 상반기 전국 204개 자원봉사센터에 등록된 인원은 126만3743명. 이 중 60세 이상 노인은 전체의 7%인 8만348명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의 40%, 호주는 17%가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많은 노인들이 소일거리가 없어 노인정 등에서 화투나 바둑 등으로 시간을 보내면서도 자원봉사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원봉사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인은 당연히 봉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지 봉사를 하는 주체자일 수 없다는 선입견도 작용하고 있다.

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봉사프로그램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대한노인회에 따르면 국내의 노인 자원봉사 영역은 아직까지 환경보호, 청소년 선도, 한자 및 예절교육, 행정보조 등에 국한돼 있다.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김동배(金東培) 교수는 “특수직이나 전문직에 종사했던 노인들이 경험과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자원봉사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가 관할하는 노인자원봉사기관은 금빛평생교육봉사단, 종합자원봉사센터, 범죄예방자원봉사단체협의회 등으로 부처마다 나누어져 있는 실정. 각 자치단체들도 지역종합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노인복지관이나 기타 노인단체 등을 통해 노인 자원봉사를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부처별로 분산된 노인 자원봉사의 자원과 정보를 공유해 각 지역의 자원봉사센터를 거점으로 자원봉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서울 송파구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이성희(李聖姬) 회장은 “노인들이 자원봉사를 하려면 차비 등 최소한의 경비가 필요한데 이를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며 “더구나 봉사활동을 하다가 부상할 경우 보험 혜택이 없어 도중에 그만두는 예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북부노인종합복지관 박준기(朴俊騎) 부장은 “노인 자원봉사의 활성화를 위해선 자원봉사를 한 시간 만큼 나중에 다른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원봉사 저축제도’를 실시할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진한기자 likeday@donga.com

▼미국의 자원봉사는…▼

남을 돕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으며 나이가 들수록 그 보람은 더하다. 유명한 교육가 페스탈로치는 노년기에 봉사하는 삶이 매우 가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노인을 만나는 것은 아직 생소한 편이다.

미국의 경우 ‘자원봉사는 국민의 책임이고 의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전 연령층에 걸쳐 자원봉사가 활발하며 시간적 여유가 있는 노인 계층이 자원봉사 활동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인 유니세프(UNICEF)의 친선대사로 기아 아동 돕기에 앞장선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나 ‘무주택자 집지어주기 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사회적 귀감이 됐다.

사회적으로는 노인복지법과 자원봉사관련법을 근거로 자원봉사자 보상제도, 자원봉사보험 및 저축제도, 봉사관련 프로그램 및 봉사 단체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립노인봉사단(NSSC)은 미국 노인에게 자원봉사활동의 메카 역할을 담당해 왔는데, 이는 정부 주도 하에 더욱 가속화됐다. NSSC에서는 노인들이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공공 또는 민간기관에서 봉사하는 퇴직 노인 봉사 프로그램(RSVP), 지역사회 내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동을 돌보는 양조부모 프로그램(FGP), 동년배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노인동료 프로그램(SCP), 퇴직교원이 학업이나 인성지도를 돕는 고령자 학교 프로그램(SSP) 등이 대표적 예다.

이와 같은 노인자원봉사에 대한 사회인식과 제도적 지원은 노인들이 적극적인 자원봉사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토록 하는 원동력이다. 한국 사회의 노인들도 노년기가 ‘여생(餘生)’으로서가 아닌 ‘의미 있는 삶’이 되도록 자원봉사 활동이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자면 ‘수혜 대상자’에서 ‘복지 제공자’로서의 노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다양한 자원봉사 영역의 개발, 노인 자원봉사 활동 관리체계 마련, 그리고 노인 자원봉사 네트워크 형성 등의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미 국회에 발의된 자원봉사활동지원법의 제정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원영희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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