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방화/문제점]전동車 설계부터 화재 無방비

  • 입력 2003년 2월 20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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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대형 사상자를 낸 대구지하철 1호선 전동차 2대는 93년 설계 당시부터 원초적으로 화재에 무방비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본보 취재팀이 20일 단독 입수한 대구지하철 건설본부의 ‘대구지하철 1호선 전동차 규격서’에 따르면 차량화재와 관련된 규정은 250쪽 분량 가운데 단 한 줄만 형식적으로 명시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는 전동차 내부가 불타면서 유독 가스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바람에 사고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구지하철 건설본부가 작성한 이 규격서는 전동차의 ‘차체구조는 불연성 재질 사용을 원칙으로 하지만, 불가피할 경우 난연성 구조로 할 수 있다’고만 명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화재로 내장재가 탈 경우를 대비한 구체적인 유독 가스의 배출기준이나 난연성 재질의 기준 등을 전혀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동차 설계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이 규정은 사실상 화재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라며 “강제성이 없는 조항이 제대로 지켜졌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건설본부는 전동차를 설계한 뒤 93년 9월 한진중공업에 생산제작을 주문했다. 그러나 당시 1호선 전동차의 객차당 구입가격은 6억여원으로 책정돼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2호선 전동차의 계약단가(9억원)에 비해 3억원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건설본부 관계자는 “당시 전동차 생산 3개사(한진 대우 현대·지금은 로템으로 통합)의 수주경쟁이 치열했다”며 “이 때문에 생산단가가 더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적은 비용을 들이는 바람에 화재에 취약한 값싼 내장재가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1호선 전동차 설계와 구매를 담당한 대구지하철 건설본부 관계자들은 “계약 당시에는 화재안전에 관한 정부의 기준도 없었으며 예산을 낮추는 게 급선무였다”며 “전동차 주문서에 화재안전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대구지하철 건설본부는 2001년 2호선 전동차 제작을 로템측에 주문하면서 처음으로 독성가스 등에 관한 안전규정을 마련했다. 건설본부의 2호선 주문서에는 화재안전에 대해 ‘전동차 제작 때 바닥재 내장재 단열재 기타 도료(페인트) 등에 대한 구조적 화재방지 방안과 화재발생시 화염전파 연기 독성가스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대구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설본부 관계자는 “국내에는 전동차의 화재안전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없어 외국의 규정을 참고해 이 같은 규정을 만들었다”며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화염이나 독성가스 실험을 해야할지는 여전히 막막하다”고 말했다. 한편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2월 대구지하철을 비롯해 지하철 전동차를 생산하는 로템사의 전동차를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선정해 각종 지원을 펴온 것으로 확인됐다. 차세대 일류상품이란 세계 시장에서 1∼5위에 들 수 있는 우수제품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대구=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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