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대엽/시민단체 ´권력의 길´ 가나

  • 입력 2003년 1월 7일 18시 24분


정부는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의 상징이었고 시민사회는 저항의 진지였던 때가 그리 오래지 않다. 그런 점에서 6일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시민단체 대표들에게 깊숙이 허리 굽혀 절하는 모습은 그것이 당선사례든 새 정부의 지지기반 확대를 위한 전략이든 간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변화니 변동이니 하는 말을 실감케 한다.

▼일부만 포함한 균열정치 우려▼

시민단체 대표들과 노 당선자가 맞잡은 손은 어쩌면 ‘아름다운 동반’을 예고하는 것일 수 있다. 이 동반관계는 새 정부에서 급류를 탈 가능성이 있지만 실은 이미 지구촌 자체의 질서를 바꾸어 온 세계화, 지식정보화 등의 메가트렌드가 예고한 내용이기도 하다. 정부와 시민단체, 나아가 기업과의 관계가 적대나 갈등이 아니라 건전한 제휴로 바뀌고 있는 것은 이러한 대전환의 일면이다. 정부든 기업이든 혼자만의 힘으로는 폭증하는 사회적 욕구를 감당할 수 없고 공존의 질서 또한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와 시민단체의 협조는 이런 점에서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노-민(盧-民) 연대’는 시민단체가 권력의 핵심에 성큼 들어선 것으로 비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권력에 대한 불신만큼이나 ‘진보적 시민’에 대한 경계가 함께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에 이 같은 우려는 더욱 크게 들린다. 시민단체 본연의 역할은 여전히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에 있기에 이러한 걱정은 한층 더 설득력을 지닌다.

무엇보다도 ‘노-민 연대’는 새로운 정부의 핵심적 과제라고 할 수 있는 국민통합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곧 출범할 노무현 정부는 여전히 뚜렷한 지역균열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른바 2030세대의 약진을 통해 세대기반을 새롭게 갖게 되었고, 또한 분단체제 하에서 과도하게 지탱되고 있는 이념적 균열이 집권의 또 다른 기반이 되고 있다. 따라서 지역, 세대, 이념의 골을 메우는 국민통합의 과제가 다른 어떤 정부보다 중요하게 부각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시민단체는 청년세대와 진보이념이 중첩된 지점에 서 있다. 특히 최근 비정부기구(NGO)를 주도하는 단체들은 민주화운동의 연속선상에 위치하고 있어 동질성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만일 노-민 연대를 그 반대편에서 보게 된다면 ‘균열의 정치’로 보이기 쉬울 것이다.

노-민 연대는 시민단체의 전망과 관련해서 또 다른 우려를 낳는다. 그간 우리 시민단체들은 정치개혁을 압박하면서 엄청난 영향력을 보여왔다. 그 과정에서 주요 시민단체들이 크게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요 시민단체들이 추구하는 영향력 중심의 활동은 겉모습만을 키워 실제 회원 수를 늘리거나 풀뿌리 기반을 다지는 내실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자율성과 공공성의 내적 기반을 다지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풀뿌리 시민들의 실질적 기반을 개척하는 ‘시민을 향한 활동’이 현실적 요청이고, 이 점에서 시민단체들의 활동은 어쩌면 ‘이제부터’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노-민 연대를 통한 시민단체의 권력으로의 이동은 이러한 기대를 흔들리게 하고 있다. 특히 시민단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학계인사들의 대거 이동은 시민단체의 공백과 권력편향성을 우려케 한다.

▼밖에서 권력 견제해야▼

노-민 연대의 문제에는 새 정부의 국민통합 과제와 시민사회의 미래가 걸려 있다. 정권은 특정세력이 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펼치는 정치가 바람직하려면 국민전체를 향한 노력이어야 한다. 또 시민단체는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권력의 밖에서 포용을 격려하고 동시에 견제와 감시의 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노 당선자와 시민단체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부디 손쉬운 세력화와 여론몰이가 아니라 ‘공존의 질서를 구축하는 개혁’을 위해 설득과 관용, 경쟁과 견제라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정수를 보여주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기를 바란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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