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1>노동인구 감소→성장둔화 ‘시한폭탄’

  • 입력 2002년 12월 31일 17시 10분


고령화 문제가 당장 시급한 우리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머지 않아 한 단계 더 높은 고령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가 서울 금천구의 모 음식점에서 어렵게 사는 노인 150명을 초청해 송년잔치를 열어주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고령화 문제가 당장 시급한 우리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머지 않아 한 단계 더 높은 고령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가 서울 금천구의 모 음식점에서 어렵게 사는 노인 150명을 초청해 송년잔치를 열어주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고령화 문제는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다. 2000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2%로 한국은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2019년에는 14.4%가 돼 한 단계 더 높은 ‘고령 사회’가 된다. 고령화는 노동인구 감소→경제성장 둔화→노인복지 축소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재정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민간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고령화 시대의 사회 경제 문화적 현상과 문제점을 시리즈로 짚어보고 대책을 알아본다.》

“평균수명이 늘어났다는 것은 인류의 큰 업적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은 이제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2002년 4월 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엔 주최의 ‘제2차 세계 고령화 회의’에서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던진 경고다.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시한폭탄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고령화. 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더욱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느라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신경 쓰지 못한 사이 슬며시 우리 곁에 다가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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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다가온 고령화〓유엔은 65세 이상 인구(노인)가 전체의 7% 이상일 때 ‘고령화 사회’, 14% 이상일 때 ‘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에 노인이 7.2%로 이미 고령화 사회가 됐다. 2002년에는 노인비율이 7.9%로 더 늘었고 2019년에는 14.4%로 크게 늘어 고령 사회가 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옮겨가는 데 19년밖에 걸리지 않는 셈이다. 프랑스는 115년, 스웨덴은 85년, 미국은 75년이 걸렸다. 또 영국은 45년, 일본도 26년이 소요됐다. 2, 3세대를 거치면서 고령화가 완만히 진행된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갑자기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또 ‘초고속’으로 고령 사회를 맞이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 주된 이유는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대신 수명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15∼49세의 여성 1명이 출산하는 자녀는 6명(1960년)→4.53명(1970년)→2.83명(1980년)→1.59명(1990년)으로 떨어져 2001년에는 1.3명으로 낮아졌다. 이는 세계적인 저출산 국가로 꼽히는 프랑스(1.89명), 일본(1.33명)보다 적은 숫자다.

반면 평균 수명은 1960년에 52.4세에서 66.2세(1980년)→71.1세(1990년)→75.9세(2000년)로 늘어 2020년에는 80.7세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가족 관계도 크게 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 자식과 떨어져 사는 비율이 90년 25.8%→95년 36.5%→2000년 44.9%로 늘어났다.

▽3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한다〓고령화는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반면 이들에게 의지하는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활동인구(15∼54세)에 대한 노인 인구의 비율이 99년에는 9.6%였으나 2030년에는 35.7%로 늘어난다. 젊은이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제성장이 둔화된다는 점이다. 일할 능력이 있고 생산성이 높은 인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경제활동을 적게 하면서 의료 연금 등 복지혜택을 받아야 하는 계층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으로 생기는 ‘파이’는 똑같거나 작아지는데 이것을 나눠 먹으려는 ‘입’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평균 수명이 1년 증가하면 노인 인구는 0.2% 늘어나고, 노인 인구가 1% 늘어나면 경제성장률은 0.47% 감소한다고 삼성경제연구소는 추정하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블랙스톤 그룹의 피터 G 피터슨 회장은 저서 ‘노인들의 사회, 그 불안한 미래’에서 “노인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근로 인구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줄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대 갈등을 부른다〓급속한 고령화는 노인의 빈곤, 질병, 소외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비용을 요구한다. 그 부담이 고스란히 젊은 세대에게 돌아온다는 게 문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조사본부의 최원락(崔元洛) 전문위원은 “부양해야 할 인구가 증가하면 경제활동인구의 조세 및 준조세 부담이 늘어나 세대간 불평등과 긴장이 초래되고, 이는 ‘고령자 소외’라는 사회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세대간의 대립’도 예상된다. 숫자가 많아진 노인들이 정치적 힘을 발휘해 국가와 사회에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고, 이에 맞서 젊은 세대는 세금과 연금보험료 내기를 기피하거나 과도한 부양책임에 저항하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朱明龍) 회장은 “선진국처럼 국내에서도 노인의 정치적 파워가 갈수록 커질 것”이라며 “세대간의 갈등이 초래되지 않도록 정부가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설 때〓고령화는 정부의 재정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보고서에서 “연금 보건 의료 등 고령화와 관련해 한국정부가 지출해야 하는 재정이 국내총생산(GDP)의 2%에서 50년 후에는 8.5%로 늘어나 재정 운영에 심각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01년 7월 보고서에서 “한국은 빠른 고령화로 연금 수급자가 늘어나면서 30년 안에 재정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령화 문제는 이제 개인과 가정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령화 문제에 접근하지 않고 전통적인 경로사상과 가족책임주의에 의존해서는 부작용을 막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김상균(金尙均·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막대한 재정 지출이 요구되는 고령 사회에 들어서기 전에 범정부적 차원에서 종합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고 또 기업과 시민단체 등 민간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적극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전문가 기고▼

박순일(朴純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경제학박사

고령화 사회에 도달하는 시기는 국가마다 다르고 그 대응방안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스웨덴과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과 미주 국가는 1940년대를 전후해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에 들어섰고 일본은 1970년에 고령화 사회가 됐다.

고령 사회(aged society)에 이르는 시기도 나라마다 달라 스웨덴 영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는 1970년대, 이탈리아 스위스는 1980년대, 일본 그리스는 1990년대에 고령 사회가 됐다.

미국 캐나다 호주는 유럽과 마찬가지로 1940년대에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 고령 사회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 이유는 이들 세 국가가 젊은 계층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고령 사회에 도달하기까지 세계경제가 성장을 계속하는 등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어서 노인문제에 대한 특별한 대책을 강구하기보다는 기존 복지대책을 개선하는 데 치중했다.

스웨덴의 경우 노인인구 비율이 10%를 넘은 1950년대에 80세 이상의 후기 고령인구가 크게 늘어나자 고령자 보호에 대한 기본대책을 수립했다. 고령자의 욕구를 기초로 한 주택 및 장기요양서비스의 공급에 주안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독일 역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노인인구 증가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복지정책을 유지해 오다가 199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노인 대책을 수립했다. 1992년에 고령자 계획을 수립하고 그 이듬해인 1993년에 제1차 고령자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이를 중심으로 1년 뒤에 종합적인 고령자 정책을 마련했다.

다시 말하면 독일은 고령 사회에 이미 도달했는데도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않다가 통일에 따른 재정부담 및 경제성장 추세를 감안해 복지재정의 효율화를 추구하면서 고령자 정책을 정비한 것이다.

일본은 평균수명의 연장과 사회구조 및 가치관의 서구화 현상으로 출산력이 급격하게 낮아져 노인인구 비율이 크게 높아지자 1980년대부터 노인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1989년에 고령자 보건복지추진 10개년 전략을 ‘골드플랜’으로 구체화하고 이를 ‘신골드플랜’ ‘골드플랜21’로 발전시켜 왔다. 1995년에는 ‘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해 중장기 고령사회 대책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이후 노인대책을 시행해 오기는 했지만 최근의 저출산 및 사망률의 저하에 따른 급속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2001년 국무총리실에 노인보건복지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노인 대책은 그 규모나 질에서 과거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므로 단순한 생계 및 의료보호를 넘어서 고용 의료 주거 평생교육 등이 종합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특별대책기구를 설치해 중장기적인 사업계획, 재원조달 및 서비스 관리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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