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수진/지역주의 이번엔 깨자

  • 입력 2002년 12월 24일 18시 17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운 정치’를 앞세운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3김 시대가 막을 내리는 시점에 국민은 3김 정치 혁파 과업을 그에게 맡겼다. 이제 정치개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다.

3김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사당(私黨)정치와 가신(家臣)정치가 그 핵심이다. 권력은 사유화되고 사회는 가신관료적 지배에 복속된다. 정치에 대한 환멸은 커가고 민주주의는 좌절하고 또 불신받는다.

▼´탈지역화´ 집권당부터 실천을▼

3김 정치의 기반은 결국 지역주의다. 지역주의는 결코 시민사회에서 자연스레 태동하지 않았다. 지역에 기반을 둔 3김이 지역정당의 주역들이었다. 지역주의는 이들이 분할 장악해 온 정치사회에서 확대 재생산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3김 정치 혁파는 정치사회 개혁에서 출발해야 하며 그 핵심과제는 정당정치의 탈지역화다.

정당정치의 탈지역화는 누가 이끌 것인가. 노무현 당선자가 그 선봉에 설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3김 시대를 일관한 그의 정치적 소신은 반(反)지역주의였다. 국민은 그의 일관된 소신을 지지해서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주었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가 국민경선을 거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직후 필자는 이 ‘시론’을 통해 지역주의에 기대어 승리하려는 유혹을 과감히 떨쳐버릴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이제 16대 대통령으로 확정된 노 당선자에게 필자는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지역주의에 의탁해 통치기반을 손쉽게 확립하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라고.

그렇다면 정당정치의 탈지역화는 어떻게 이룰 것인가. 첫째, 집권 민주당의 개혁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근본적으로 혁파되어야 하며, 그 원칙은 탈지역화에 두어야 한다. 호남당, 영남당, 혹은 영호남당이 아니라 실질적인 전국정당이 되어야 한다. 또 노무현의 사당이 아닌 공당(公黨)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정당의 이념, 정책, 노선이 명료해져야 할 것이다. 민주당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어떤 모습을 지닌 민주주의인지 밝혀야 한다. 이 노선에 동조하는 자들이 정당 혁신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권력 주위에 구름처럼 몰려들 소위 경력추구자(careerists)들이 아니라 민주당식(式) 민주주의에 대한 신봉자(believers)들이 중심이 되어 동조세력을 규합해 가는 재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그동안 지역주의와 가신정치에 안주해 오직 주군(主君)에 대한 맹종을 대가로 정치적, 물질적 시혜를 누려 온 낡은 정치세력들은 혁파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노 당선자와 새 정당은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상당 부분 상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상실은 보다 큰 정치적 보상으로 상쇄되고도 남을 것이다.

셋째, 정당개혁은 제도개혁과 더불어 추진되어야 한다. 정략적 계산에 입각한 제도개혁은 참담하게 실패할 것이다. 정당 민주화와 탈지역화, 원활한 정치적 세대교체, 권력분립의 실질적 확립 등을 위한 제도개혁의 골간은 사실상 마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선거운동 과정을 통해 충분한 공감대 역시 형성되었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새로 획득한 노 당선자로서는 실로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제도개혁의 골간이 실현될 경우 대한민국 대통령은 더 이상 ‘제왕적’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감한 제도개혁 결단할때▼

지난 1년간 노 당선자는 ‘사즉생(死卽生)’의 과감한 결단을 정치적 고비 때마다 해왔고 많은 국민은 그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이제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 오른 그는 오직 그만이 내릴 수 있는 역사적 결단에 직면해 있다. 월드컵과 더불어 타오르기 시작한 젊은 한국의 힘은 빈사 상태의 한국 민주주의를 회생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와 역할을 그에게 부여했다. 지역주의의 달콤한 유혹을 다시 한번 끊어버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한 길을 의연하게 걸어가는 정치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간구한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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