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05…몽달 귀신 (7)

  • 입력 2002년 12월 24일 17시 40분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어둠은 짙어지고, 바람도 없는데 공기에 떠밀리고 있는 듯한 저항을 느꼈다. 돌계단을 다 올라가 영남루 쪽으로 걸어가자 기둥 뒤에서 하얀 치마가 펄럭였다. 인혜는 우근의 손을 놓고 계단을 올라갔다. 심장이 태아처럼 가슴을 걷어차고, 공포가 머리 속을 가득 채워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얀 그림자가 손을 잡은 채 뒤돌아보았다. 한 사람은 낯모를 여자였지만 키가 작은 쪽은 소원이었다. 아가씨, 라고 중얼거렸는지 어쨌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하얀 그림자가 사라졌다. 인혜는 모든 감정이 자기 밖으로 둥둥 떠도는 것을 느꼈다. 소원이는 죽었어…그건 혼이었어…소원이의 손을 잡고 있던 아름다운 여자는 아랑이었고…검흔욕마춘강벽한수년년화혈사(劒痕欲磨春江碧恨水年年花血瀉)…….

“형수야!”

크게 숨을 들이쉬고 뭐라 말하려 했으나, 숨이 막혀 신음소리로 바뀌고 말았다.

“형수!”

인혜는 우근에게 등을 보인 채 고개만 끄덕였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 무섭다.”

인혜는 혼신의 힘을 짜내 고개를 돌리고, 달려온 시동생을 두 팔로 안았다. 우근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누나는 어디로 가버린기고?”

인혜는 목구멍으로 기어오르는 덩어리를 꿀꺽 삼키고, 떨리는 목소리를 토했다.

“돌아옵니다.”

난간에서 강을 내려다보자, 배다리를 건너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형님이네예, 형수는 못 뛰니까, 먼저 내려가이소.”

돌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우근의 뒤를 따라 인혜는 배에 신경을 쓰면서 터벅터벅 다리를 움직였다. 움직이지 않으면 다리가 땅에 빨려 들어갈 것 같아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돌계단을 다 내려가기 전에 흘깃흘깃 영남루를 돌아보았지만 하얀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이가 아까부터 돌덩이처럼 꿈쩍하지 않는다, 이 아이도 겁을 먹고 있는 것일까? 괜찮다, 엄마가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너를 지켜줄 테니까, 안심하거라, 너는 무서워할 거 없다, 무서운 게 보이면 엄마가 너 눈을 가려주고, 무서운 소리가 들리면 엄마가 너 귀를 막아주고, 무서운 게 쫓아오면 엄마가 가로막아줄 거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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