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래정/이민정책 '제자리걸음'

  • 입력 2002년 12월 23일 18시 28분


1964년 도쿄(東京)올림픽 행사 경비의 상당 부분은 150만 해외 일본인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소니, 마쓰시타 등 ‘일제 가전제품이 최고’라는 성가도 미국 내 일본 교포들의 입을 타고 퍼졌다.

전 페루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일본계였다. 브라질 내 일본인 70만명이 가진 땅이 일본 영토보다 넓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해외 일본 동포가 곧 국가자산임을 1868년 메이지유신 때부터 깨달았다. 그래서 6월 18일을 아예 ‘해외 이주의 날’로 정해 놓고 있다.

세계 곳곳에 퍼진 한인(韓人)은 모두 560만명이 넘는다. 미국에만도 비공식 이민을 합쳐 200만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까지 철저히 한국 정부의 ‘정책 대상’ 밖이었다. 한때는 이민자들을 ‘오죽 살기 힘들었으면…’ 하는 눈으로 보기도 했었다. 외국의 한인단체들은 권위주의 정부에 늘 ‘눈엣가시’였고 정부는 무책(無策)으로 일관했다. 1960년대 식량확보 차원에서 사들인 남미 농장에 이민자들을 보낼 때도 군사혁명에 비판적이었던 군 간부들을 끼워서 내보냈다. 일종의 ‘축출 이민’이었다.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90년대 초 일본 내 화교들을 만난 자리에서 “어디에 있든지 당신들은 중국 공민”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감격한 일본과 동남아 화상(華商)들이 톈안먼(天安門)사태 이후 외자에 목말라했던 본토에 몰려들었고 이것이 중국 경제특구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세계경제에 대한 ‘노출’이 잦아지면서 요즘 미주 이민을 떠나는 세대는 30대 이하로까지 젊어졌다. 한국 내 재산을 처분하지 않고 떠나는 ‘코즈모폴리턴형’ 이민도 더 늘어나는 추세다.한국과 미국인의 경계가 갈수록 엷어지는 것이다. 미국의 유대인들은 워싱턴의 정책결정에 엄청난 파워를 행사한다. 한국인의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는 동포들은 국적을 떠나 ‘한국의 자산’이다. 그러나 이중 국적, 외국인 신분 관련 규정 등은 아직도 196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 외국의 동포들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내년 1월 13일이면 미주 이민 100주년이 된다. 나라 밖의 동포들을 보다 트인 눈으로 봐야 할 때다.

박래정 국제부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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