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원용/和合이 가장 먼저다

  • 입력 2002년 12월 19일 18시 27분


우선 새 대통령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투표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느 쪽 후보이든 득표에 힘을 쏟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승자나 패자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할 태도는 화합이다. 승자인 당선자는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야 하고 패자는 민주주의 신봉자라면 당연히 결과에 승복해야 할 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심(私心) 없이 지지와 협력을 해야 한다.

▼지역-보혁갈등 해소할 기회▼

이번 선거는 법적으로는 제16대 대통령을 뽑는 것이었지만 내용으로는 8·15 광복 직후부터 김대중 정권까지의 지난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새 역사가 열리는 시기의 대통령을 뽑은 것이다. 좀더 자세히 나누어 미군정 한국민주당 이승만 정권까지 15년간이 1기요, 다음 군사정부시대가 2기, 민주당 구파 신파를 계승한 양김시대를 3기라고 본다면 이번 대통령은 그 전 시대들과는 다른 새 시대의 역사를 열어가야 한다.

왜 새 시대인가. 여러 가지 이유 중 우선 지역갈등이 끝나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역간 문화적 정서적 차이는 보편적 현상이지만 이것이 정치적으로 첨예한 대립을 보인 것은 1971년 선거부터였다. 이때 시작된 경상도와 전라도의 극단적 대립은 이후 30여년간 양김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어찌됐든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대립이 약화되고 후보마다 지역갈등 해소를 거듭 공약(公約)했다. 이제는 지역간 화합이 이루어져야 하고 또 이루어질 수 있는 때다.

다음으로 보수와 진보 혹은 혁신과의 화합이다. 이는 정책의 차이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민주적 연대 관계를 가지라는 말이다. 이승만 정권에서도 보수와 혁신의 대결이 있었으나 집권세력인 보수세력에 의해 혁신세력은 탄압되고 말았다. 이번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보수, 진보, 혁신세력이 ‘열린 장’에서 서로 민주적 경쟁을 펼쳐 보였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미국보다는 오히려 유럽의 국가들처럼 보혁(保革)간의 화합이 이뤄지기 바란다. 다음은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다. 이 두 문제에 대해서는 후보간 차이도 두드러졌지만 공통점 역시 있다. 남북관계에서는 모든 후보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주장했고, 대미관계에서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차별을 해소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하는 관계를 모두 지향했다. 이제 후보간에 보여준 미시적 관점의 차이는 유지하더라도 거시적 협력은 이뤄져야 한다. 그 밖에 성차별, 노령화, 빈부 문제도 크게 보면 서로 공통점이 많았으니 공약대로 실천해야 한다.

민족의 장래를 염려하고 일하는 여야 지도자들, 특히 새로운 집권세력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일이 선결 과제다. 국민에게 약속한 그 많은 공약이 공약(空約)이 된다면 결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태극기는 음(陰)과 양(陽)의 대립이 아닌 조화다. 주변의 네 괘가 상징하는 바가 각각 다르나 모두 조화로운 자연의 이치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광복 후 이런 태극기를 향해 늘 경례해 오면서도 정치분야에서는 대립과 대결로 일관해왔다.

▼南北 뜻모아 평화의 땅으로▼

이번 대통령은 21세기를 여는 첫 대통령이나 앞으로 5년 내에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역사는 소멸되고 말 것이다. 북은 대륙권인 중국에, 남쪽은 해양권인 미국과 일본 편에 서서 서로 대결만 계속한다면 한반도는 동북아시아에서 평화 파괴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고, 반대로 남북화합이 이뤄지면 평화를 만드는 완충지대가 될 것이다. 지중해 유럽 미국을 거쳐 동북아시아로 옮겨오는 새 역사의 흐름 속에서 중심지대 역할을 하려면 화합이 관건이다.

우리 앞에 열려 있는 새 역사는 능동적으로 우리가 화합을 성취해내느냐의 여부에 따라 변화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의 긴 역사 어느 때에도 없었던 흥망의 선택을 바르게 하기 위해 먼저 화합부터 해야 한다.

강원용 평화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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