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위용/선관위 경고에 콧방귀

  • 입력 2002년 12월 16일 18시 47분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사람은 민주당 강원도선거대책본부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우리는 모른다.”

민주당의 한 선거사무원은 16일 오전 원주시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에서 ‘산타 복장 운동원을 유세장에 들여보내지 말라’는 선관위의 사전 통보를 무시한 경위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상급기관에서 왔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이었다.

현행 선거법은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풍선이나 도구 등을 진열하거나 배부할 수 없고 선거운동원도 같은 모자나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주시선관위는 노무현(盧武鉉) 후보 지지 유세에 나선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가 다른 지역 유세에서 산타 복장을 이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원주에서는 선거법을 어기지 말라고 15일 오후 1시경 민주당측에 미리 촉구했다.

그러나 두시간 뒤 원주에 도착한 정 대표는 중앙시장 유세에서 청중 가운데 서 있던 산타 복장을 한 여성을 연단 위로 불러내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췄다. 선관위의 경고가 무시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민주당은 이날 청중에게 노란 풍선을 수십개 나눠줬다.

선관위의 주의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 춘천시선관위는 한나라당 선거운동원들에게 같은 색상의 모자를 쓰지 말라고 주의를 줬지만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 한동안 애를 먹었다. 한나라당 운동원들은 “날씨가 추워 단체로 모자를 구입해 쓰고 있다”며 선관위의 주의와 지적을 피해 나갔다.

선거법이 여야 합의로 제정되고 개정됐지만 지나치게 까다로워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선관위의 사전 경고를 받고도 이를 아예 무시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선거법 무시 풍조는 대통령 선거일이 임박해질수록 더 심각해진다는 게 선관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총선에서는 선거사무장 등이 실형을 선고받으면 당선자가 의원직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선관위의 경고가 효과가 있지만, 대선에서는 지구당 관계자가 고발돼도 대통령직을 잃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 선거법을 무시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당과 후보들이 선거법을 우습게 알고 위반한다면 유권자가 위반의 경중을 가려 표로 심판하는 길밖에 없다.

정위용 대선특별취재반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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