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97…전안례(奠雁禮) 19

  • 입력 2002년 12월 13일 18시 23분


꽃을 사시오 꽃을 사 꽃을 사시오 꽃을 사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에 꽃이로구나

봉울봉울 맺은 꽃 숭얼숭얼 달린 꽃

방실방실 웃는 꽃 활짝 피었네 다 핀 꽃

벌 모아 노래한 꽃 나비 앉아 춤춘 꽃

이 송이 저 송이 각 꽃송이 향기가 풍겨 나온다

이 꽃 저 꽃 이 꽃 해당화 모란화

난초 지초 왼갓 향초 작약목단에 장미화

인혜의 노래가 끝나자 방에 모인 사람들은 우렁찬 박수를 보냈지만, 노인은 우철의 손을 꼭 잡고 말없이 흔들었다. 우철이 손을 놓자 노인의 손은 허공을 헤맸다.

“증조 할배” 인혜는 증조할아버지의 손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이 몹쓸 놈의 자식이 우리 꽃 같은 증손녀를 따 가버렸어. 아이구, 허전해서 어쩌나, 인혜야 우리 새끼야. 다음에는 내 장례식 때나 만나겠다” 노인은 증손녀의 손을 볼에 비비며 눈물지었다.

“증조 할배, 나는 잘살 겁니다. 고손의 얼굴을 꼭 보여드리지예. 약속합니다” 인혜는 증조 할아버지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인혜는 부엌에서 솥뚜껑을 세 번 움직이고 집과 작별을 고했다. 밖으로 나오자 태양이 정면으로 집을 비추고 있었다. 햇살은 따끈따끈한데 부는 바람은 휭-휭 스산했다. 가늘게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우철은 인혜가 나왔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눈치였다. 인혜는 살며시 남편을 바라보았다. 나는 저 사람을 좋아한다. 오늘부터 한지붕 아래 산다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좋아한다. 인혜는 남편과 같은 것을 보기 위해 턱을 들었다. 새파란 하늘. 바람에 맑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휭-휭 휭-휭.

병인(丙寅)년 길일이었다. 신랑이 말에 올라타고 새색시가 가마에 타자, 색시의 어머니가 색시의 손에 빨간 종이 쪼가리를 몇 장 쥐어주었다.

“강을 건널 때하고 성황당 앞을 지날 때, 이걸 길에다 뿌려서 잡귀를 물리치거라. 시댁 부모님들 잘 모시고, 좋은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 자식들 쑥쑥 낳고, 행복하게 잘 살거라. 알았제”

신랑이 말허리를 차자 말이 따가닥따가닥 걷기 시작했다. 역 앞에는 신랑 신부의 행렬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역 주변은 일본 사람들의 거리라 그런지, 치마 저고리 차림의 여자들보다 기모노 차림의 여자들이 더 많았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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