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열린마음 열린세상]아파트가 20년도 못버틴다고?

  • 입력 2002년 12월 11일 18시 17분


스위스 루체른,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라기보다 그저 작은 마을이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300년의 역사가 묻어서일까, 아늑하면서도 품격이 있어 좋았다. 이번에 새로 수리 단장을 했다지만 낡은 집이라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바로 옆 건물도 수리 중이었다. ‘뜯고 새로 짓지’라고 그냥 해 본 말에 지배인 역시 동감이라고 했다. 그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공사 기간도 단축되고 쓰기에 편리한 현대식 건물이 될 수도 있고.

▼헌집 쓰레기는 다 어쩌려고…▼

그런데 왜 안해? 필자로선 당연히 드는 의문이다. 그가 잠시 얼굴을 찡긋거리더니 “헐기엔 우선 300년의 역사가 아깝고, 거기다 스위스는 워낙 땅덩이가 좁아 건축 폐자재를 묻을 데가 없어요. 경관을 망치거나 호수라도 더럽히면 우린 끝장입니다”라고 말한다.

난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보수하게 될까? 짓되 허물고 묻을 걱정까지 하는 나라. 그래서 집 한 채, 다리 하나 놓아도 천 년을 가게 짓는 나라 스위스다.

‘20년 된 낡은 집’, 고로 재건축 대상이 되는 한국. 200년이라면 또 모르겠다. 당국에서도 좀 미안하고 창피했던지 최근에서야 30년으로 연장하겠다는 논의도 있긴 한 모양이다.

도대체 어떻게 지었기에 20년이 지나면 헐어야 된단 소리냐? 한국 건축계의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건지, 재료가 시원찮아 이런 건지, 지진 때문인지, 외국도 사정이 우리와 같은 건지, 아파트 주민으로선 궁금한 게 한둘 아니다. 20년마다 이삿짐 보따리를 싸들고 다닐 것도 걱정이고 당장 무너지지나 않을까도 두렵다. 도대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이게 투기꾼들이 재건축을 앞당기기 위해 부리는 농간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요즈음엔 안전진단위원회까지 생겨 재건축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도 1987년 이전의 강남구 아파트 90%는 재건축을 해야 한다니, 세계 사람들이 들을까 두렵다. 지금 당장에도 50%가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이 경제적이라니. 도대체 ‘경제성’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궁금하다.

최근 일고 있는 재건축 사업은 이렇듯 건물의 내구 연한, 주거생활 환경, 경제성, 투기 붐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한심하지만 어쩌면 모두들 그렇게 근시안인지. 당장 건축 폐자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다. 설마하니 그 못된 처리 업자들을 시켜 야산에 눈가림으로 묻거나 남의 밭에 그냥 버리고 가게 할 생각이야 아니겠지. 가끔 뉴스에 보도되는 현장의 참상은 끔찍하다. 하지만 이건 겨우 시작일 뿐이다. 대단위 단지의 재건축이 본격화되면 쓰레기와의 전쟁은 결사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건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다.

규정대로라면 몇 년 안에 전국의 아파트를 다 허물어야 한다. 늦어도 2020년엔 1세대 아파트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건 한 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매번 20∼30년 주기로 전국 아파트들을 다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하니 건축업자는 살판났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때마다 생겨나는 폐자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생활 쓰레기만으로도 매립장은 넘쳐나는데. 바다에 버릴 것인지, 땅에 묻을 것인지, 아니면 그냥 쌓아 둘 것인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사정이 이렇게 절박한데도 환경부의 목소리는 잠잠하고 까다로운 비정부기구(NGO)도 조용하다. 김포 매립지도 말이 없다.

▼천년가도 괜찮을 집을 짓자▼

결론은 분명하고 간단하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 재건축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무너질 위험이 없는 한 재건축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야 한다. 주거 환경이니 경제성이니 하는 사치스러운 이야기를 할 상황이 전혀 아니다.

급작스러운 산업화, 도시화로 날림식은 어쩔 수 없었다 치자. 하지만 이젠 정말 천년을 가는 집을 지어야 한다. 건설업계는 정녕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산비탈에 찢어진 판자로 지은 움막도 20년이 더 갔다. 까마귀집도 그보단 오래 간다. 300년 전 스위스는 지금 우리보다 더 가난한 나라였다. 청년들은 외국 군대 용병으로 나가 목숨과 바꾼 돈으로 본국 가족이 연명할 수 있었다. 용병제도가 철폐된 것도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도 그들은 천년 앞을 보고 살았다.

그곳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의 망가진 산하가 떠오른다. 어쩐지 슬퍼진다.

이시형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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