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89…전안례(奠雁禮) 11

  • 입력 2002년 12월 4일 17시 30분


…푸우…파아…푸우…깨어 있는 것도 자고 있는 것도 아니다…나룻배 속에 누워…푸우…파아…피로와 온기와 구역질 위를 노닐며…첫날밤이 이래도 괜찮은 걸까? 엉덩이 밑에 하얀 천을 깔고, 처녀의 증거를 보여주고 싶었는데…흉측한 일이 생기면 어쩌지…혼전에 몸을 섞은 벌이 내리면…푸우…파아…발치에 발이 있다…푸우…파아…손끝에 손이 있다…이렇게 내내…죽을 때까지…푸우…파아….

꼬끼오! 첫닭이다. 달려야지. 우철은 중력 같은 잠을 거스르고 눈을 떴다. 어? 여기가 어디지? 아아, 그렇지, 어제는 친영이라 인혜 집에서 첫날밤을 맞았지. 오른팔이 저리고 목 근육이 뻐근하다. 너무 깊이 잠들어 몸 한 번 뒤척이지 않았다. 방금 전에 꾼 꿈, 아주 좋은 꿈이었는데 벌써 생각나지 않는다. 꿈을 꾸는 내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어서, 어째 다른 사람의 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기억나지 않는다. 휭-휭-

덜컹 덜컹 덜컹 덜컹, 바람이 센 것 같다. 날은 맑았을까? 달리고 싶다! 앞으로 일주일은 혼례 의식이 계속될 모양인데, 일주일이나 달릴 수 없다니 말도 안 된다. 인혜를 집에 데리고 가면, 달리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뭐라 말리든 나는 달린다! 우철은 달리고 싶어 안달하는 다리 근육을 달래며 집의 고요함에 귀기울였다. 밤보다 더 조용하다. 어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는데, 마치 거짓말 같다. 모두들 술에 취한 채 잠들었겠지. 우철은 기지개를 펴고 아까보다 밝아진 방을 돌아보았다. 남의 집에서 자기는 처음이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화장기 없는 인혜의 얼굴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왠지 묘한 기분이다. 이렇게 가까이서 여자가 자고 있다니. 힐긋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눈을 뜰 기척이 전혀 없다.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이 배 안에 있는 아이도 잠자고 있을까? 아니면 깨어 있을까? 아들? 딸? 나를 닮았을까, 아니면 인혜를 닮았을까. 인혜 언니들은 다들 펑퍼짐한데, 인혜도 살다 보면 그렇게 될까? 아이를 갖고서 허리에 살집이 생기고 엉덩이도 커졌다. 처음 사귈 때도 절대 마른 것은 아니었지만 허리는 잘록했고, 배도 손바닥처럼 평평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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